| 한자 | 高家窩堡 遺蹟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 지역 | 길림성 장춘시 덕혜시 만보진 신립촌 고가와보둔 |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부여 |
| 성격 | 유적 |
|---|---|
| 크기 | 동서 500m, 남북 400m |
| 면적 | 약 20,000㎡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3년 |
| 현 소재지 | 북위 43.56.50 동경 125.11.04 |
| 원소재지 | 북위 43.56.50 동경 125.11.04 |
길림성(吉林省) 장춘시(長春市) 덕혜시(德惠市) 만보진 신립촌(新立村) 고가와보둔(高家窩堡屯)에 있는 청동기 시대, 부여 시대의 유적.
고가와보 유적은 1983년 길림성 전역에 대한 문화재 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청동기 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어 요금(遼金)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가와보 유적은 길림성 덕혜시 만보진 순산촌 고가와보둔에서 남쪽으로 500m 거리의 나지막한 구릉상에 위치해 있다. 남쪽 비탈의 500m 지점에는 신립(新立) 저수지가 위치해 있으며, 서쪽은 간무해하(干務海河)의 지류가 저수지로 유입되면서 대지를 형성하고 있다.
고가와보 유적의 면적은 대략 20,000㎡이며, 동서 길이는 500m, 남북 너비는 400m 정도이다. 유적의 이미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일부는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가와보 유적의 지표상에는 대량의 붉은색, 흑색 혹은 갈색의 협사도(夾砂陶) 잔편이 노출되어 있으며, 정족(鼎足)과 격족(鬲足) 등도 확인되었다. 유적의 남쪽 비탈의 단면상에서 지표에서 50~60㎝ 깊이에서 회갱(灰坑)과 소성토(燒成土)가 확인되며, 동쪽과 서남쪽, 서쪽의 절벽 단면상에서도 50~60m 깊이의 문화층에서 다량의 기와편과 다양한 기형(器形)의 토기편(土器片)이 확인되었다.
고가와보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는 굵은 모래가 비짐된 것과 가는 모래가 비짐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굵은 모래가 비짐된 토기는 수비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무문(無文)에 소성 온도가 낮고, 연질(軟質)에 속한다. 제작 방법은 모두 수제로써 손으로 누른 흔적이 남아 있다.
2013년 현재 마을 주변에 산업 단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저수지 남쪽으로 장춘시 외곽 도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유적에는 마을이 확장되면서 민가가 들어서 있다.
고가와보(高家窩堡) 유적은 비교적 두터운 문화층과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 시대 서단산(西團山) 문화인들이 취락을 형성한 이후 요금 시대까지 사용된 유적으로 파악된다. 또한 고가와보 지역이 일찍부터 부여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