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생활·민속/생활 |
|---|---|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농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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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질 | 목재, 금속 |
중국 동북3성에서 이주 한인들이 김을 매거나 농작물을 캘 때 쓰는 쇠로 만든 농기구.
농사일 가운데 가장 힘들고 고된 일이 김매기이다. 우리나라의 작물은 온도가 높으면서 습도가 많은 여름에 성장하기 때문에 잡풀도 이때 더불어 자라게 된다. 잡초는 농작물에 공급되는 양분을 빼앗고, 햇빛을 막아 작물의 성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김매기의 정도는 생산량을 좌우한다.
김매기는 단지 풀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풀을 제거하면서 흙을 부드럽게 해 작물의 뿌리에 공기가 잘 통하게 하고, 흙을 뿌리 쪽으로 모아줌으로써 작물이 센 바람에도 잘 버티게 해준다.
호미는 비록 작고 가볍지만 비대칭 역삼각형의 날을 가진 독특한 구조이다. 호미는 크게 논호미와 밭호미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논호미가 밭호미보다 날이 크다. 논호미는 재배 조건이 같은 논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모양이나 기능의 차이가 없지만, 밭호미는 사용하는 지역의 토양과 기후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과 기능을 가진다. 비가 많은 곳은 외귀호미를 쓰고, 비가 적은 곳에서는 양귀호미를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는 비가 많은 곳은 풀뿌리가 땅속 깊이 박히기 때문에 끝이 뾰족하고 가벼운 외귀호미가 좋고, 반대로 건조한 지역에서는 뿌리가 얕아 땅을 긁어만 주어도 풀이 뽑히기 때문에 날이 넓고 무거운 호미를 쓴다.
밭의 김매기는 토양에 따라 다양한 호미를 사용하였다. 제주도처럼 땅이 화석재로 이루어져 단단한 지역에서는 호미날이 날카롭고 좁은 것을 사용하였고, 잡돌이 많은 화전 지역에서는 잡초를 긁는 양귀호미를, 일반 지역에서도 나뭇잎, 괭이 모습과 같이 생긴 다양한 호미를 사용하였다. 목축을 하는 지역에서는 긴 밀낫을 사용하여 무성한 풀의 줄기를 잘랐다. 그리고 콩이나 조, 옥수수를 심은 밭에서는 쟁기로 고랑 사이에 난 풀을 자르거나 흙에 묻어버렸다.
김매기 횟수는 작물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조선 시대 농서에서는 벼나 조는 3~4회 이상, 참깨는 3회, 콩과 팥은 2회, 녹두·밀·보리·삼 등은 1회가 적당한 것으로 적고 있다. 작물에 따른 김매기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도 적고 있는데, 『농사직설(農事直說)』에서는 “논의 김매기는 모두 3~4회 하는데, 모가 반 자[15㎝] 정도 자라면 처음 호미로 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조생종(早生種)인 올벼는 성장이 빠르므로 조금이라도 김매기를 늦추면 안 되고, 모가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김을 맬 것을 권하고 있다.
한편, 이주 한인의 양귀 호미는 특히 조밭을 매는 데에 안성맞춤이다. 앉은 채 앞으로 나가면서 날로는 고랑 사이의 풀을 들어내고, 양귀로는 조를 솎아내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조 농사가 줄어들어 호미 자루가 중국처럼 유난히 길어졌다. 콩밭이나 옥수수밭도 이것으로 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제초제가 있어 예전처럼 세 벌 김매기를 하지 않는다.
함경도 지방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있는 연변(延邊) 지역에서 쓰이는 재래호미는 날의 양끝이 뾰족한 세모꼴의 양귀 호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다른 지방의 것에 비해 자루가 긴 편으로 짧은 것은 50㎝, 긴 것은 80㎝에 이른다. 흙을 끌어 내리거나 끌어 올려서 고랑이 넓은 이랑에 북을 주기 알맞다. 따라서 감자밭 등에서 두 손으로 잡고 허리를 반쯤 구부린 자세로 풀을 매지만, 좁은 땅에서 북을 주기는 어렵고 그 위에 한 손으로는 쓰지 못하는 불편이 따른다. 이 호미가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점은 슴베[현지에서는 슴게 라고 부른다] 부분이 넓어서[55㎝], 비가 내리는 날 김을 맬 때는 흙이 두텁게 들러붙을 뿐만 아니라 떠낸 흙이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점이다. 또 슴베의 길이가 짧은 것도 결점의 하나이다. 그러나 한국의 호미는 쭈그려 앉아서 김을 매므로 풀을 깨끗하게 뽑아낼 수 있다. 따라서 각 농가에서는 두 가지를 다 갖추고 필요에 따라 알맞은 것을 골라 쓴다.
오늘날 연변 일대의 한인[조선족]들도 중국인[한족] 호미의 영향으로 우리 고유의 것을 개량해 쓰며, 날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자루가 길고 짧은 데에 따라 ‘중국인[한족] 호미’, ‘한인[조선족] 호미’라 부른다. 한편 중국인[한족] 호미는 너른 밭의 김을 매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서서 매기 때문에 풀뿌리가 다 뽑히지 않는 결점도 있다. 조는 벼를 많이 재배하는 곳에서나 심을 뿐이다. 공이 많이 드는 반면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정부의 생산량 위주 농업 정책에 따라 조 대신 콩을 많이 심게 되었다. 또 벼농사가 없는 곳에서는 콩을 많이 심기만 하면 쌀과 바꿀 수 있어 편리하다. 이에 비해 중국인[한족]들은 오늘날에도 조 농사를 짓는다. 말에게 조짚을 먹이기 위해서이다. 말은 소와 대조적으로 볏짚이나 콩을 먹이면 눈병이 생기고 열이 돌아서 곧 죽는다. 조짚은 매우 귀해서 조 한 근 값이 쌀 2근과 맞먹는다.
한인[조선족] 호미의 자루는 53.5㎝이고, 자루 지름은 35㎝이다. 슴베의 길이는 20㎝, 날 너비는 13㎝이다. 무게는 0.5㎏이며 한 개에 10위안이다. 한 번 구입하면 20여 년을 쓸 수 있다.
중국인[한족]의 호미는 슴베의 너비가 12㎝에 지나지 않고, 자루에서 몸체 사이가 위로 한 번 휘어 올라가서 흙이 잘 들러붙거나 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손의 힘이 날 끝에 쉽게 전달된다. 또 자루의 길이도 100~150㎝ 정도로 매우 길어서 서서 작업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호미는 자루가 짧은 편이어서 쭈그려 앉거나 허리를 반쯤 굽혀야 한다. 따라서 ‘중국인[한족]은 서서 김매고 한인[조선족]은 엎디어 맨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중국인[한족]들은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그들에게는 ‘73살이 되어야 허리가 생긴다.’는 속담이 있으며 젊은이가 허리 아프다는 말을 하면 노인으로부터 ‘너는 허리가 아직 생기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는 핀잔을 듣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