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농기구
정의

중국 동북3성에 거주하는 한인[조선족]들이 땅을 파고 흙을 뜨거나 흙이나 모래 따위를 퍼 담을 때 사용하는 연장.

개설

한인[조선족]들은 삼각형 손잡이와 삼각형 날을 단 삽과 긴 손잡이에 네모난 날을 단 삽, 두 가지를 사용한다. 전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개량형 삽이고 후자는 중국의 전통식 삽이다. 개량형 삽은 공사장 등에서 흙이나 모래 따위를 떠 옮길 때에 사용하고, 중국식 삽은 곡식을 공중에서 흩뿌려 바람에 쭉정이 따위를 날리거나 비스듬히 세워 놓은 얼거미에 곡식을 퍼부어 검부러기를 걸러내는 데에 쓴다. 삽은 제조 공장에서 만든 것을 구입하여 사용하며, 일부는 자신의 신체에 맞게 삽자루를 스스로 만들어 교체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중국의 왕정(王禎)은 1313년에 낸 『농서(農書)』에서 삽(臿)을 설명하는 가운데 “『방언(方言)』에 따르면 연(燕)나라 동북의 조선열수(洌水) 일대에서는 이를 조(鍤)라 한다”고 적었다. 『방언』의 저자 양웅(揚雄)은 1세기 무렵의 사람이므로 한민족은 적어도 1세기 전부터 삽을 써왔음을 알 수 있다. 1527년(중종 22)에 나온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삽’를 ‘삷’이라 표기하였다.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는 ‘대나무 뿌리가 1∼2척으로 자라면 그 뿌리를 삽으로 자르고 흙으로 덮어 두라’고 적고 있어 오늘날처럼 삽이 자르는 기능과 덮는 기능을 동시에 행했음을 알게 해준다.

과거 삽자루에는 손잡이가 따로 없이 단지 끝부분을 손잡이로 사용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삽자루가 짧고 삼각형 손잡이를 댄 삽이 등장하여 땅에 대한 삽입력을 높였다. 그러나 길림성(吉林省)의 한족들은 날이 삼각형이건 네모이건 삼각형 손잡이를 별도로 달지 않았다.

형태

서호수(徐浩修)가 지은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삽을 그린 그림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18세기 중엽 우리나라 삽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긴 자루에 끝이 반듯하고 네모난 날을 박았으며, 날이 힘을 더 받도록 하려고 굽통의 일부분을 날 가운데까지 이어 놓았다.

삽은 형태나 쓰임에 따라 둥근삽·각삽·개양삽·부삽·꽃삽·야전삽 등으로 나뉜다. 둥근삽은 날 끝이 둥근 것으로 땅을 파는 데 쓰며, 각삽은 날 끝이 넓적하며 흙이나 곡물 따위를 얹어 옮길 때 주변으로 흘러 떨어지지 않도록 날의 좌우 양쪽을 위쪽으로 조금 휘어 놓았다. 개양삽은 소금밭에서 소금을 퍼 담는 데 쓰는 삽으로 날은 긴 네모꼴이고 끝이 곧다.

부삽은 아궁이나 화로의 재를 치거나 숯불이나 불을 담아 옮기는 데 사용하는 조그마한 삽이다. 쇠붙이로 네모가 지거나 둥글게 만들되 바닥이 좀 우긋하고 긴 자루가 달려 있다. 화로의 재를 눌러 덮기 위하여 끝이 네모나고 자루의 한 끝에 꼭지를 붙인 것도 부삽이라 한다. 꽃삽은 어린 식물을 옮겨 심을 때 쓰는 흙손만한 작은 삽으로 모종삽이라고도 한다. 야전삽은 군인들이 가지고 다니며 쓰는 개량삽으로 날은 작으며 자루에 접어서 붙인다. 길림성 한인 마을에서 사용하는 삽은 둥근삽과 각삽이 주류를 이룬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삽은 가래처럼 삽자루의 목에 두 개의 줄을 매고 두 사람이 각기 좌우에서 당기고 다른 한 사람은 자루를 쥐고 흙덩이 따위를 멀리 던지기도 하는데 이를 ‘삽가래’라고 한다. 가래가 없는 농가에서 가래 대신 삽을 이용한 사례이다. 이처럼 삽은 민간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김광언, 『한국 농기구고(韓國 農器具攷)』,(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 1986)
  • 『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6)
  • 홍희유, 「15세기 이후의 조선 농구에 대하여」(『문화유산』 5호, 과학원 출판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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