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생활·민속/민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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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놀이/놀이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민속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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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 지역의 한인 사회에서 행하는 놀이의 한 종류로, 제기를 발로 차는 행위.
제기차기는 계절에 관계없이 어린이들이 엽전과 종이를 이용하여 만든 제기로 두 명 이상이 편을 나누어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양발을 이용해서 공중의 제기를 떨어뜨리지 않고 차면서 즐기는 승부 놀이이다.
제기차기의 연원은 축국(蹴鞠)에서 찾을 수 있다. 축국은 둥근 공을 발로 차는 방식으로 축구와 유사한데, 후대에 와서 둥근 공이 제기 형태로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축국(蹴鞠)은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중국 고대 황제(黃帝) 시대[BC 2700]에 무술 연마를 위해 고안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김춘추(金春秋)[604∼661]와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축국을 한 기록이 등장하며, 『구당서(舊唐書)』에는 고구려 사람이 축국에 능숙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삼국 시대에 널리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 이규보(李奎報)의 『이상국집(李相國集)』, 조선 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도 축국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25년 최영년(崔永年)이 지은 『속악유희(俗樂遊戱)』에는 ‘축치구(蹴稚毬)라 하여, 꿩의 꼬리를 이용해 만든 제기를 양발로 차며 놀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제기는 보통 구멍이 뚫린 엽전이나 쇠붙이를 창호지로 감싸고 윗부분에 술을 만들어 사용한다. 이 놀이는 공간에 관계없이 공터만 있으면 할 수 있다.
놀이 방식은 한발 차기, 양발 차기, 한 발을 땅에 대지 않고 계속 차기, 발 바깥쪽으로 차기 등이 있다.
‘땅강아지’는 한발 차기 형태로, 한 발을 바닥에 고정시키고 다른 발로 땅을 한번 짚었다 올리면서 공중에 있는 제기를 발 안쪽으로 차올리는 형태이다. 이것을 ‘맨제기’라고도 한다.
‘헐랭이’는 제기를 차는 발을 땅에 딛지 않은 상태로 차는 것이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계속 차야 하기 때문에 ‘땅강아지’보다 힘들고 어려운 동작이다. ‘어지자지’는 두 발을 번갈아 가며 땅에 디디면서 발 안쪽으로 차는 방식이다. 일종의 ‘양발 차기’ 형태이다.
실제 놀이할 때에는 예의 제기 차는 방식에서 한 가지씩 골라 차는 경우도 있지만, 세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하는 ‘삼세가지’ 방식도 있다. 대개 제기를 찬 숫자를 세어 많이 차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지만, 일정한 수, 곧 쉰 번이나 백 번과 같이 일정량을 정해 놓고 차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 키 높이 이상으로 올려 차는 ‘키지기’, 한 번 차서 제기를 입에 물고 다시 차는 ‘물지기’, 차서 머리 위에 얹었다가 다시 차는 ‘언지기’ 등도 있다. 그리고 차는 발 부위도 발 안쪽이 아닌 발 바깥쪽이나 발 등으로 차는 방식,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가며 차는 방식도 있다.
보통 여러 명이 한 사람씩 차서 가장 적게 찬 사람은 술래가 되어 일정한 거리 밖에서 이긴 사람들에게 제기를 던져주어 차게 하는데, 이것을 ‘종들이기’라고 한다. 이긴 사람은 종 들인 제기를 직접 잡아서 서로 던지거나 자기편끼리 잡고 도망치면서 술래를 골탕 먹이기도 한다. 이때 종을 들인 제기에 상대가 헛발질을 하면 죽게 된다. 또한 상대가 찬 제기를 술래가 잡으면 종들이기의 벌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여러 사람이 빙 둘러서서 하나의 제기로 한꺼번에 차는 경우도 있다. 서로 자기 앞에 온 제기를 차다가 다른 사람에게 차주는데, 만약 자기 앞에 온 제기를 제대로 차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면 종을 들이게 된다.
제기차기는 한 발을 땅에 딛고 다른 발을 이용해 공중에서 제기를 차기 때문에 몸의 균형 감각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차는 횟수가 많아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체 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놀이라 할 수 있다. 계절과 남녀의 구분이 없는 어린이 놀이로, 일부 성인들도 즐긴다.
제기차기는 어린이들의 놀이로, 계절에 관계없이 널리 행해지던 놀이이다. 1990~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연변에서는 밤마다 청소년들이 공원에 모여 제기차기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근래 들어 아이들 사이에서 다소 인기가 떨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강가점향(姜家店郷) 경기촌(京畿村)은 경기도 사람들이 집단 이주한 마을인데, 여기에서도 제기차기가 널리 행해졌다. 특히 집단 노동 중심의 집체 시기인 1953년부터 1982년 사이에는 젊은 세대의 집단 놀이가 활성화되었는데, 이 당시 각종 민속놀이와 함께 제기차기는 중요한 종목이었다.
1982년 개혁개방 이후에도 유소년층을 중심으로 제기차기가 널리 유행했다. 요령성(遼寧省) 화룡시(和龍市) 동성촌 해란진에는 정월 대보름에 즐기는 다양한 놀이 중에 제기차기가 당연히 포함되었다.
이렇듯 2000년 전후까지 한인[조선족]들 사이에서 제기 차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박경휘가 『조선족 민속사 연구』에서 제기차기를 승부가 있는 경기놀이로 분류하고 있는 것처럼 근래 들어 각종 다양한 체육 대회의 시합 종목으로 제기가 포함된다. ‘중국 조선족 상원절 축제’나 ‘소수 민족 전통 체육 경기 대회’ 등 제법 큰 행사에도 제기차기가 경기 종목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