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작

한자 麻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정의

중국 동북3성 지역 한인 사회에서 참여자 4명이 100여 개의 패를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짝짓기를 하여 승패를 겨루는 놀이.

개설

마작(麻雀)은 마장(麻將)이라고 하는데, 보통 네 사람이 상아나 골재(骨材)에 대쪽을 붙인 백여 개의 패를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짝짓기를 하여 승패를 겨루는 내기성 놀이라 할 수 있다. 마작은 놀이 방식의 복잡함과 생소함으로 인해 한국 내에서는 소수에 의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이 놀이가 본래 중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국 한인 사회에서는 널리 유행하였다.

연원

마작은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외국을 왕래하던 인사들에 의하여 한국에 보급되었으나, 놀이 기구가 고가인 데다 흔치 않아서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즐기고 있다.

마작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연원은 분명하지 않다. 명나라 천계연간(天啓年間)[1621∼1627]에 만들어진 마따오에서 변형되었다고 알려지며, 현재의 놀이 방식과 형태는 청나라 초기에 완성되었다. 한자어 ‘마작(麻雀)’은 패를 섞을 때의 소리가 마치 대나무 숲에서 참새 떼가 재잘거리는 소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주로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성행하고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한국의 마작은 상아나 골재(骨材)에 대쪽을 붙인 104개의 패로 이루어져 있다. 마작패는 수패, 자패, 꽃패의 세 종류로 이루어진다. 크기는 가로 2.4㎝, 세로 1.8㎝, 높이 1.4㎝ 정도의 장방형을 이룬다.

마작패의 수는 나라마다 약간 차이가 있는데, 중국마작은 144개이고, 한국마작은 삭수패를 사용하지 않고 꽃패 중 춘하추동의 4개만을 사용하여 104개이며, 일본마작은 꽃패를 사용하지 않아 136개로 이루어져 있다.

수패(數牌)는 한자로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표시된 패이며 다시 만수패, 통수패, 삭수패로 나뉜다. 만수패(萬數牌)는 1만(一萬)부터 9만(九萬)까지 한자로 표시되어 있다. 통수패(筒數牌)는 동그라미의 숫자에 따라 1통부터 9통까지 9종류가 있다. 삭수패(索數牌)는 한국마작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패로, 1삭은 공작의 그림이 있고, 2삭부터 9삭까지는 대나무의 그루 수로 표시되어 있다.

자패(字牌)는 풍패와 삼원패로 이루어진다. 풍패(風牌)는 동(東), 남(南), 서(西), 북(北) 네 종류, 삼원패(三元牌)는 백판(白板), 녹발(綠發), 홍중(紅中)의 세 종류가 있다. 꾳패는 매난국죽(梅蘭菊竹)과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여덟 가지 패가 하나씩 존재한다.

놀이 방법

마작은 4명이 하는 놀이로서, 처음에 패를 보이지 않게 쌓은 후 각자 13개씩 패를 뽑고 시작하여,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새로 패를 하나씩 뽑은 후 가지고 있는 14개의 패 중 하나를 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네 명이 사각형의 탁자에 원형으로 앉아 친(親)을 정한다. 친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모두 자(子)가 된다. 게임에 들어가는 것을 입국(入局)이라 하며, 먼저 좌석을 정하고 선(先)을 결정한다. 선이 결정되면 패를 배열하고 분배한 뒤 짝지어진 패를 가지고 점수를 헤아려 승패를 결정짓는다.

한국의 마작은 처음에 동, 남, 서, 북의 패를 섞은 후에 하나씩 골라 순서대로 자리에 앉는다. 동가(東家)가 된 사람이 주사위를 굴린다. 주사위의 눈에 해당하는 사람이 정식 친(親)이 된다. 친이 정해졌으면 패산을 쌓는다. 패를 흩뜨려 섞은 다음에, 위에서 봤을 때 사각형 모양이 되도록 각자의 앞에 2층으로 패산을 쌓는다. 중국마작의 경우 한 층에 18개, 일본마작은 17개, 한국마작은 13개씩 쌓는다.

패산을 쌓았으면 개문[배패]을 한다. 먼저 친이 주사위를 굴려 개문할 패산을 정한다. 해당하는 사람이 다시 한 번 주사위를 굴려서 개문할 패산의 오른쪽에서 주사위의 눈만큼 떨어진 패부터 개문을 시작하여 짝을 맞추어 간다.

마작은 규칙이나 방법이 복잡하고, 기술과 전략, 계산력을 필요로 하는 두뇌 게임이며, 운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마작은 승부를 겨루는 도박성이 강한 놀이로, 놀이 방식이 다소 복잡하기 때문에 널리 대중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승패가 있는 박진감 넘치는 놀이로 매우 재미있기 때문에 일부 계층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특히,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지식인 계층이나 일부 놀이 애호가 사이에서만 성행하기도 하였다.

현황

마작은 한국에서는 대중화되지 않고 일부 노인층에서만 유행하였으나, 중국 동북3성 한인 사회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널리 성행하였다.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강가점향(姜家店郷) 경기촌(京畿村)은 경기도 사람들이 1940년을 전후해 집단 이주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1985년 개혁 이후에 노년층은 화투, 윷놀이[일반 윷과 콩윷] 등에 관심을 갖고, 청년층은 마작이나 축구, 농구, 배구와 같은 운동을 즐겼다. 이 시기는 여가 문화가 확대되고, 놀이도 집단에서 개인으로 전이되어 가는 시기이다.

이후 1990년대에 청년층을 중심으로 여가 생활의 지출이 늘어나면서 마작이 도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내 도시로의 노동력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일부 청년층 사이에서는 마작이나 포카를 이용한 도박이 유행하였다. 이로 인해 마작 도박을 하다가 공안에 적발되어 과태료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문헌
  • 최영년, 「속악유희」(『해동죽기』 중편, 1925)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91)
  • 김선풍·정형호 외, 『재중 교포의 민속-경기 출신 집단마을 조사 보고서-』(국립 문화재 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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