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경향

한자 永慶鄉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영경향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83년
변천 시기/일시 1909년
변천 시기/일시 1934년
변천 시기/일시 1949년
변천 시기/일시 1956년
변천 시기/일시 1958년
성격 행정 지명
면적 459.85㎢
인구[남/여] 9,700명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속하는 향진급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영경향안도현 서남부에 위치하며 현성과는 69㎞ 떨어져 있다. 면적은 459.85㎢이고 인구는 9,700명이다. 행정 구역으로는 용진촌(勇進村)을 비롯하여 17개 행정 마을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조선족 마을은 고등촌(高登村)[225명]·고성촌(高城村)[269명]·류수촌(柳樹村)[183명]·용진촌(龍進村)[196명]·조양촌(朝陽村)[185명]·청산촌(淸山村)[165명] 등으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명칭 유래

광서 전후 조선에서 연이어 발생한 자연재해와 일제의 압박과 착취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농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이국땅인 연변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을 세우고 마을 이름을 지을 때 자연 지리적 형태를 반영한 것도 있지만 정착해 살면서 번영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염원을 반영한 지명이 많은데 영경향(永慶鄕)도 ‘영원히 행복하고 경사스럽게 살아보자’는 염원에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영경향은 비교적 일찍 개발된 지역으로 경내에 대사하(大沙河)가 흐른다고 하여 ‘대사하’라고도 불리었다. 1909년 안도현 악도향(樂道鄕)으로 개설되었고 1934년에는 영경구가 설립되었다. 1949년에는 영경구가 폐지되고, 1956년에 영경향으로 설립되었다. 1958년 영경공사로 바뀌었다가 1983년 여름에 다시 영경향으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영경향은 동쪽으로는 화룡시 팔가자진과 서쪽으로는 돈화시 대포시하진과 인접해 있다. 계절풍 기후구에 속하며 자연환경에 알맞은 오미자 산업과 인삼 산업이 발달하였다. 꿀벌과 연변 황소 등을 통해 경제적 수입을 늘리고 있으며, 귀중한 약재가 많이 산출되어 ‘인삼의 고향’으로도 불린다. 영경향의 임야 면적은 8,848㏊이고 초원 면적이 1,200㏊이다.

현황

영경향의 조선족 마을에서는 대부분 수확기, 탈곡기 등 농기계를 갖추어 놓고 농사를 짓는다. 안도현의 편벽한 산골에 위치한 조양촌에서도 43세대에 121명의 인구가 97㏊의 밭을 경작하고 있다. 2007년 한국에 나간 노동인력 42명의 수입을 제외하고도 촌의 순수입이 일인당 5,200위안에 달할 정도로 개혁개방 초기에 비해 대폭 증가하였다. 그리고 2008년 19채의 새집을 지어 안도현 내에서 농촌 초가집 개조를 제일 빨리 마무리 지은 조선족 마을이 되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모두 초가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농촌 초가집 개조를 통해 대부분 벽돌 기와집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 심혜숙, 『중국 조선족 취락지명과 인구분포』(연변대학출판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2)
  • 심혜숙·정매화, 『연변조선족마을과 건설모식』(연변대학출판사, 2009)
  • 『연변조선족자치주 개황』(연변조선족 개황 집필팀, 2009)
  • 영경향 행정구획(http://www.xzqh.org/html/show/jl/24442.html)
  • 연변일보(www.iybr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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