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禹山下 1080號 古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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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공사 우산대대 제1 생산 마을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 |
|---|---|
| 양식 | 흙무지돌방무덤 |
| 크기(높이 | 둘레 약 100m, 높이 약 10m.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6년 |
| 소재지 | 길림성 집안시 태왕공사 우산대대 제1생산 마을 |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우산하 1080호 고분은 집안시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하나인 우산하 고분군(禹山下古墳群) 내에 있다. 집안시 동쪽 태왕공사(太王公社) 우산대대(禹山大隊) 제1 생산마을에 위치하며, 우산 남쪽 기슭 중부의 완만한 비탈 지역으로 앞에 큰길을 사이에 두고 광활한 평지와 마주하고 있다. 고분의 서쪽 평야에 흙무지돌방무덤인 오회분(五盔墳)과 사회분(四盔墳)이 있다. 동쪽에는 태왕릉(太王陵)이 위치한다.
우산하 1080호 고분은 흙무지 돌방무덤이며, 둘레 약 100m, 높이 약 10m이다. 도굴 구덩이의 입구는 분구 남측 가운데 허리 이상의 상당히 높은 부위에 위치하고 있다.
금동제 포정(泡釘)과 장식못, 금동제 지느러미 모양 장식 조각, 금동제 원형 장식편, 금동제 삼각형 장식조각, 금동제 사슬모양 장식, 금동제 투공장식조각, 금동제 고리, 금동제 보요(葉片), 반구형 철제 추완(樞碗) 등이 출토되었다. 도굴 구덩이 윗부분에 쌓인 메운 흙 가운데서 1기의 석비(石碑)가 박혀 있었는데, 원래 분구 꼭대기에 세워진 것으로 도굴당한 후 분구 꼭대기 남측의 봉토가 도굴 구덩이에 흘러들어 앞으로 넘어지면서 박힌 것으로 보고 있다. 석비는 윗 부분이 둥글고 아랫부분은 네모난 형태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1.6m이다. 석비의 네 모서리를 정교하게 잘라내어 단면은 팔각형이 되었다. 석비 몸체에는 8각형의 능선이 매우 뚜렷하다. 석비 윗 부분은 원형으로 마무리했는데 8개 능선의 연장선은 희미하다. 비석의 표면은 심하게 풍화·부식되었고, 갈라진 흔적이 매우 많은데, 글을 새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묘지를 정리한 후 석비는 분구 앞 도로변으로 옮겨졌다.
우산하 1080호 고분은 오래 전에 도굴을 당하였다. 도굴 구덩이는 수직으로 아래로 향했고, 널길 입구의 폐쇄석에 구멍을 내 직접 널길과 널방으로 통하게 하였다. 고분 동남쪽 모서리에는 거대하고 가지런한 기단석이 보존되어 있으며, 봉토는 돌로 기초를 잡았는데 그 규모가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보다 더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산하 1080호 고분은 출토 유물은 많지 않지만 장엄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고분 자체는 통구 고분군의 거대한 고분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왕릉은 아니고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장 구조가 오회분이나 사신총(四神塚)과 흡사하지만, 부장된 금동 장식구로 미루어 볼 때 6세기 중·후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