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하 2112호 고분

한자 禹山下 2112號 古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계단식 돌무지돌굴무덤
크기(높이 한 변의 길이 18.70m, 남은 높이 3.20m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5월~7월
소재지 집안시 통구 고분군
정의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 우산하 고분군(禹山下古墳群)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개설

우산하 2112호 고분우산하 고분군 내에 있는 계단식 돌무지 돌굴무덤[계단 적석 석광묘(階段積石石壙墓)]이다. 축조 시기는 4~5세기 대로 추정되고 있다.

위치

우산하 2112호 고분집안시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하나인 우산하 고분군(禹山下古墳群) 남쪽 가장자리의 넓고 평평한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는 대형 봉토 석실분이 많다. 고분의 남쪽으로 60m 떨어진 지점에 오회분 3호 고분오회분 4호 고분이 있으며, 동쪽으로 60m 떨어진 지점에는 사신총(四神塚)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우산하 2112호 고분은 1966년에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가 실측 조사하면서 우산하 2112호묘(禹山下2112號墓)[JYM2112]로 편호되었다. 1994년 집안시 박물관에서 집안 고구려 벽화 모의 전시실 건설 공사와 병행하여 조사를 한 바 있다.

형태

우산하 2112호 고분의 평면은 장방형이며, 3단 계단이 남아 있는데 각각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 석재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계단 석재의 윗면 둘레에 너비 0.1m의 돌기를 만들고, 위에 놓인 돌을 돌기 안쪽으로 끼워서 층층마다 겹쳐 쌓았다. 재질은 가공된 석회암 혹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계단 위에는 석광(石壙), 무덤 바깥길, 이실(耳室)[움푹 들어간 아치형 공간]이 축조되어 있는데, 석광은 평면이 장방형으로, 남북 길이는 6m, 동서 너비는 5m이다. 석광 네 벽은 훼손이 심하여 남아 있는 석재가 거의 없고, 바닥에 석판이 1층 남아 있을 뿐이다.

묘도(墓道)는 남벽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묘도 양측에 이실(耳室)이 있다. 무덤 바깥길의 방향은 151°, 길이는 4.60m, 너비 2.38m이다. 묘도의 바닥에는 직경 0.2m의 강자갈이 깔려 있고, 작은 강자갈로 평평하지 않은 부분을 메운 상태이다. 묘도의 양 벽은 모두 가공한 석회암을 어긋나게 하여 겹치지 않도록 첩첩이 쌓았는데, 3~5층이 남아 있고, 높이는 0.9~1m이다. 고분을 정리하기 전에 전체 묘도과 이실 전체는 불규칙한 석재가 들어차 있는 상태였다.

이실(耳室)은 모두 2개로, 묘도 양측에 각각 축조되었다. 북쪽으로 석광 남벽까지의 거리는 1.20m인데, 두 이실 바닥에는 직경 0.15∼0.20m의 강 자갈이 깔려 있다. 동서 이실의 입구는 모두 돌을 쌓아 막았다.

이실과 묘도가 만나는 부분의 석재는 정연하게 가공하였다. 그러나 이실 쪽 부분의 석재표면은 가공하지 않았다. 길이, 높이, 크기가 같지 않고 가지런하지 않다. 이실 입구를 막은 돌과 무덤을 봉한 돌, 그리고 이실을 봉한 돌이 달라서 묘도와 이실을 축조한 후 다시 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중에는 묘도와 이실이 없는 광실 묘장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출토 유물

우산하 2112호 고분에서는 총 35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부분은 석광 내 서남쪽 모서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다. 동쪽 이실에서는 환형(環形) 갈고리(挂鉤) 1점과 환형 배국(環形扒鋦) 2점이 나왔고, 서쪽 이실(耳室)에서는 환형 괘구(環形挂鉤) 1점이 출토되었다. 기와 등 건축 구조물은 대부분 석광 내부의 서쪽 면과 계단 바깥에서 출토되었다.

금실 4단, 반구형 좌식에 엽편이 연결되어 있는 금제 보요식(金泡飾), 행엽형(杏葉形)으로 한쪽 끝이 뾰족하고 가운데 부분은 약간 볼록한 금제 보요식(金葉飾)이 출토되었다. 행엽형 보요식의 이파리 끝부분에는 구멍 한 개가 뚫려 있고 구리 실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구리 실에는 직경 0.4cm인 마노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외 은제 수하식 3점, 금동제 장식, 금동제 신발못, 금동제 못 등의 금동기 140점, 철제 꺽쇠, 철제 장막걸이쇠, 철제 관못 등의 철기 141점, 연화문 와당 21점, 암키와와 수키와, 마노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우산하 2112호 고분은 처음 조사할 당시 750㎡의 돌무지 상태로서 그 형태가 명확하지 않았다. 무덤 정상부는 울퉁불퉁하고 평평하지 않았으며, 석재 일부분은 없어지거나 고분 아래로 떨어져 있던 상태였다. 현재 고분의 정확한 방향도 확인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우산하 2112호 고분은 우산 남쪽 비탈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주위에 오회분·사신총 등 대형 흙무지 돌방무덤이 많이 분포한다. 통구 고분군의 분포 정황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고분들은 산비탈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배열되었는데, 비탈 위의 연접한 돌무지무덤들은 축조 연대가 비교적 이르며, 산 아래의 무덤은 대부분 독립된 형태의 흙무지 돌방무덤으로서 비교적 뒷 시기에 축조된 것들이다. 우산하 2112호 고분의 축조 연대는 주변의 고분들과 서로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돌무지무덤에 부장된 유물들은 대부분 실용품이지만, 4세기말 전후에는 장식성 기물이 증가하고, 5세기말 이후에는 장식성 기물이 매우 보편적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산하 2112호 고분은 금·은·금동 장식품이 대량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4세기 이후의 고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돌무지 돌굴무덤은 고구려 고유의 묘제로, 통구 고분군의 돌무지무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매장부에 하나의 석광만 만들었거나 혹은 무덤 바깥길(墓道)과 석상(石箱)이 축조된 경우, 이실(耳室)이 축조된 경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실이 있는 무덤이 상대적으로 늦은 형태로서 우산하 2112호 고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실이 있는 돌무지 돌굴무덤은 통구 고분군에서 많이 발견되지 않으며, 그 연대는 일반적으로 4~5세기로 추정된다. 우산하 2112호 고분은 묘도와 이실을 구축한 후 돌로 채웠다. 고구려 고분의 묘 방향은 초기 돌굴무덤이 남향 혹은 서향이었다면 늦은 시기의 돌방흙무덤은 일반적으로 동남향이다. 이런 점에서 우산하 2112호 고분은 신·구 묘제 양식이 공존하는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洞溝古墳群-1997年調査測繪報告-』(科學出版社, 2002)
  • 集安市博物館, 「集安通溝古墳群禹山墓區2112號墓」(『北方文物』2004-2, 2004)
  • 孙仁杰·迟勇, 『集安高句麗墓葬』(香港亞洲出版社, 2007)
  • 여호규·강현숙·백종오·김종은·이경미·정동민,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Ⅳ 통구분지1 우산하·하해방·만보정·칠성산고분군』(동북아역사재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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