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파 365호 고분

한자 東大坡 365號 古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흙무지 돌방 벽화 무덤(봉토 석실 벽화분)
크기(높이 (높이) 3m
지름) (한 변의 길이) 16m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 9월 말∼11월 초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소재지 집안시 통구하 산기슭
정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통구 고분군 산하 산성하 고분군 남부 동대파 묘지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위치

동대파 365호 고분은 길림성 집안시산성하 고분군에 속해 있다. 그 중에서도 동대파 묘지의 가운데 부분에 자리한다. 산성하 고분군집안시에서 서북쪽 약 2.3㎞ 떨어진 산곡에 위치한다. 환도산과 우산의 서쪽 기슭 사이에 너비 500m되는 협곡이 동북에서 서남으로 놓여 있다. 협곡의 동북부에는 통구하가 북에서 남으로 꺾여 흐르고 있다. 통구하의 서북과 동남안은 장기간 동안 충적된 하곡(河谷) 지대이다. 동대파 묘지는 바로 대지 동측 산 아래의 완만한 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북으로 1㎞를 가면 환도 산성이 있고 고분의 북쪽에는 산성하 왕자묘[산성하 332호분]가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6년, 통구 고분군에 대한 조사가 시행되면서 집안 통구 고분군 산성하 묘구 제365호묘[JSM365]로 편호되었다. 1976년 9월 말∼11월 초에는 집안현 문관소(集安縣文管所)가 통구촌(通溝村) 농민의 협조 하에 고분 95기를 정리하였는데 동대파(東大坡) 365호묘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이 조사에서 확인된 것은 95기 가운데 54기의 파괴가 심하다는 것, 그나마 파손이 적은 41기 중 돌무지무덤[적석묘]가 2기, 39기가 흙무지무덤[봉토묘]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 조사를 통해 17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7년에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집안시 박물관이 통구 고분군에 대한 재조사와 실측을 실시하였는데 동대파 365호 고분 역시 다시 조사되었다.

형태

고분의 형식은 흙무지 돌방 벽화 무덤[봉토 석실 벽화 고분]이다. 외형은 밑이 방형인 상태에서 위로 올라가다가 윗부분이 잘린 듯 마무리 된 형태이며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16m, 높이가 3m가량 된다. 고분의 방향은 서쪽으로 40°기울어진 남향이며 내부는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 구조로 되어 있다. 발굴 전에 이미 도굴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 바깥길[묘도(墓道)]의 길이는 1.67m, 너비가 1m, 높이는 1.2m이다. 널길은 길이 1.67m, 너비 1m, 높이 1.2m 정도이다. 널방의 크기는 널방의 길이 2.7m, 너비는 2.3m, 높이는 2m이다. 천정 구조는 고임을 얹고 위에 큰 판석을 덮었다. 널방 벽에는 2㎝ 두께의 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널방 벽의 백회는 거의 다 박락되었고 현재는 동벽 일부에만 남아 있다.

출토 유물

동대파 365호 고분에서는 회색 단지와 유약을 바른 병이 하나씩 출토되었다. 단지는 고분의 널방 북벽에서 50m 떨어진 지점, 고분 입구에서 1.1m 떨어진 서벽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회색이다. 유약을 바른 병은 반구장경병(盤口長頸甁)[넓은 입과 긴 목의 병]이라 부른다. 고분 입구에서 1.1m 떨어진 서벽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높이는 25.5㎝, 목 길이는 8㎝, 구경은 6.3㎝, 바닥 직경은 13.2㎝이다. 구순은 각이 졌으며 아가리[구연부]는 반구형이다. 목은 길고 동체는 둥글다. 어깨와 동체에 철현문이 4줄씩 있다. 토기의 태도는 귤홍색이며 태질은 단단하다. 겉면에는 옅은 녹색의 유약을 발랐는데, 유약의 두께는 비교적 얇고 광택은 차이가 난다.

의의와 평가

동대파 365호 고분의 편년은 여러 안이 제시되었다. 편년 설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이 유약을 바른 목이 긴 병이다. 장설암은 반구장경병에 입힌 유약의 색과 도기의 모양이 기존에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것들과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수대(隋代)에 유행한 것과 유사하며, 비슷한 모양의 병을 발해 유물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동대파 365호 고분의 편년을 6세기 말∼7세기 초로 보았다. 위존성 또한 반구장경병의 형태는 남북조 말기의 것과 비슷하며, 발해에서도 보이므로 편년은 6세기 중엽∼7세기 이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비슷한 이유로 유훤당, 동조, 경철화 역시 6세기 말∼7세기 초로 보았다. 전호태는 2000년에 나온 저서에서는 6세기 말로 보았으나, 2009년에 나온 논문에서는 5세기 전반으로 보았다. 유물보다는 고분의 구조를 우선시 한 편년으로 생각되지만 자세한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손인걸·지용의 경우에도 고분의 구조와 벽화의 내용 등을 고려해 5세기 초∼5세기 후반으로 편년하였다.

참고문헌
  • 張雪岩, 「吉林 集安 東大坡 高句麗墓 發掘 簡報」(『考古』1991-7)
  • 魏存成『高句麗 考古』(吉林 大學 出版社, 1994)
  • 東潮, 『高句麗 考古學 硏究』(吉川 弘文館, 1997)
  •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사계절, 2000)
  • 孙仁杰·迟勇, 『集安高句麗墓葬』(香港亞洲出版社, 2007)
  • 耿鐵華, 『高句麗 古墓壁畵 硏究』(吉林大學出版社, 2008)
  • 전호태, 2009 「고구려 집안권 벽화 고분의 현황과 과제」(『울산 사학』 14, 2009)
  • 여호규·강현숙·백종오·김종은·이경미·정동민,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Ⅴ(통구분지2),(동북아역사재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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