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 고분

한자 蓮花 古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흙무지 돌방 벽화 무덤(봉토 석실 벽화분)
크기(높이 높이 7m
지름) (고분 외형) 길이 13m, 너비 12m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5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3월∼6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보수|복원 시기/일시 1981년
보수|복원 시기/일시 1982년 10월
소재지 집안시 통구하 남단 하안 평지 남대만자 중간
정의

길림성 집안시통구 고분군 산하 산성하 고분군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벽화 고분.

위치

연화 고분산성하 고분군의 북부에 위치한다. 산성하 고분군은 길림성 집안현 통구하 남단에 형성된 하안 평지 남대만자(南大灣子) 중간에 있다. 노령 협곡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통구하가 환도 산성 남벽 절벽 아래서 곡류하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남대만자이다. 남대만자에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고, 고분에서 남쪽으로 15㎞ 지점에는 집안시구(集安市區)가 있다. 북쪽으로는 강 너머 환도 산성이 보이고, 북쪽으로 70m 정도 가면 통구하가 있다. 고분의 주변에는 많은 소형 돌무지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좌우에 각각 작은 흙무지 돌방무덤이 이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4년에 집안현 문물보관소에 의해 고분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러나 일찍이 도굴을 당하였으므로 보호 차원에서 무덤 문을 폐쇄하였다. 1965년에는 길림성 문물보관회, 길림성 박물관이 고분을 실측하였다. 1966년 3월∼6월 사이에는 길림성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와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집안 통구 고분군 산성하 묘구 제983호묘[JSM983]로 편호되었다. 또한 2구의 인골, 유약 입힌 부뚜막 모형 1점, 항아리 잔편, 도금 쇠못머리, 철제 화살촉 등이 수습되었다.

1981년에 집안현 문물보관소에 의해 무덤이 수리되었고, 벽화 모사와 벽화에 대한 화학적 보존 처리도 행해졌다. 1982년 10월에는 고분이 다시 수리되고 봉토가 더해졌으며 무덤 문이 폐쇄되었다. 1996년에 다시 고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1997년에도 길림성 박물관과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에 의해 무덤 재조사와 재실측이 이루어졌다.

형태

연화 고분은 흙무지 돌방 벽화 무덤이다. 무덤의 외형은 방형에서 올라가다가 위가 잘린 듯 마무리된 형태이다. 고분의 규모는 길이 13m, 너비 12m, 높이 7m[『통구 고묘군』, 『고구려 고묘 벽화 연구』], 혹은 둘레 44m, 현재 높이 4.3m[『집안 고구려 묘장』]이라고도 한다.

묘향은 북으로 10° 기운 서향이다. 내부 구조는 양쪽에 곁방이 달린 널길에 널방이 있는 외방 구조이다. 널길은 길이 0.8m, 너비 0.88m, 높이 1.28m이다. 널길 양쪽에는 곁방이 달려 있는데 곁방의 크기는 길이 0.5∼0.52m, 너비 0.57m∼0.7m, 높이 0.62m∼0.65m이다. 널방은 장방형으로 동벽의 길이가 3.28m, 서벽이 3.58m, 남벽이 3.72m, 북벽이 3.76m 이다. 널방의 높이는 2.94m이다[『高句麗 古墓 壁畵 硏究』]. 널방의 천정은 8단 평행 고임 위에 2단의 삼각 고임을 얹은 평행 삼각 고임 구조이다. 널길과 곁방, 널방 모두 다듬은 돌로 만들었으며 백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다. 널방의 벽, 천정 고임 일부를 제외하고는 벽화가 모두 박락되었다.

벽화를 보면 우선 널방의 벽에는 모서리 여러 곳에 홍색선이 남아 있으며 기둥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널방 천정의 고임에는 연꽃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자홍색으로 먼저 그리고 묵선으로 윤곽을 그린 형태이다. 8번째 평행 고임의 측면에는 권운문이 있다. 제1층 말각 고임 밑면에도 연꽃무늬가 있고 그 좌우에 권운문이 장식되어 있다. 동남과 서남의 제1층 말각의 측면 가운데에 주작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주작의 양쪽에는 권운문이 배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

연화 고분은 일찍이 도굴을 당했으나 1966년 발굴 조사 때 비교적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동 못[1점]은 못대가리는 방형이고 뾰족한 부분은 사각 송곳 형태이다. 남아 있는 부분의 길이는 3.2m이며 몸통에 도금이 되어 있다. 철제 못[3점]은 두 개는 일반적인 못이고, 하나는 뾰족한 부분이 두 개인 아치형 못이다. 일반적인 못의 대가리는 원형이고 길이는 각각 6㎝, 16㎝이다.

부뚜막 모형[1점]은 장방형으로 측변에 아궁이가 있고 윗면에 둥그런 가마자리가 있는 형태이다. 크기는 길이가 1m, 너비가 0.3m, 높이가 0.16m이다. 매우 단단한 재질이며 겉에 녹색 유약을 발랐다. 호[1점]는 아주 작은 파편만이 남아 형태를 복원하기는 어렵다. 다만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보아 손잡이가 있는 단지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철제 손잡이도 한 점이 나왔는데 동글납작한 철제줄을 ∩형으로 만들고 가닥마다 원형의 철판을 끼웠다. 널방에서는 2구에 해당하는 인골도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화 고분은 연꽃 그림이 있어 연화총이라고도 한다. 고분의 규모나 벽화로 보아 고구려 귀족 계급의 무덤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분의 편년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5세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전호태는 구조나 주제로 보아 5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았다. 이전복은 연화 고분에서 출토된 유약 입힌 도기가 왕자묘에 비해 늦다고 보고, 삼실총과 비슷한 시기로 편년하였다. 위존성은 연화 무늬는 불교 관련 제재라는 점에 착안하고, 4세기 후반 고구려의 불교 전래 이후 불교가 일반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고분의 편년을 5세기대로 보았다. 손인걸·지용 역시 5세기로 편년하였다.

참고문헌
  • 李殿福, 「集安 洞溝 三座 壁畵墓」(『考古』1983-4)
  • 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集安縣 文物志』(1984)
  • 조선 유적 유물 도감 편찬 위원회 편, 『조선 유적 유물 도감』 6 (1990)
  •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사계절, 2000)
  • 吉林省 文物 考古 硏究所·集安市 博物館 編著, 『洞泃 古墓群』(科學 出版社, 2002)
  • 孫仁杰·遲勇, 2007 『集安 高句麗 墓葬』 (香港 亞洲 出版社, 2007)
  • 耿鐵華, 『高句麗 古墓 壁畵 硏究』(吉林 大學 出版社, 2008)
  • 전호태, 「고구려 집안권 벽화 고분의 현황과 과제」(『울산 사학』14, 2009)
  • 사회 과학원 고고학 연구소, 『고구려 벽화 무덤』 2(진인진, 2009)
  • 강현숙·백종오·여호규 외,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유물 2-집안 통구 분지편』(동북아 역사 재단,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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