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麻線溝 2100號 古墳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마선향 홍성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 |
|---|---|
| 양식 | 계단식 돌무지무덤 |
| 관련인물 | 봉상왕, 소수림왕 |
| 크기(높이 | 높이 6m, 서변 32.2m, 남변 29.6m, 북변 33m |
| 문물|보호단위등급 | 세계문화유산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6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 소재지 | 길림성 집안시 마선향 홍성촌N : 41° 6'4.00"E : 126°8'46.84" |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마선향(麻線鄕) 홍성촌(紅星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무덤.
마선구 2100호 고분은 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마선구 고분군 내에 있다. 마선구 고분군의 고분 가운데 가장 크며, 4세기경에 축조된 왕릉급 무덤으로 봉상왕(烽上王) 혹은 소수림왕(小獸林王)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마선구 2100호 고분은 집안시 서쪽 마선향 홍성촌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집안시구와 3㎞ 가량 떨어져 있다. 고분은 판분령(板盆嶺) 지맥 서쪽 기슭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평탄 대지 위에 자리한다. 지세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이다. 묘장의 해발 고도는 200.1m이다. 고분 동쪽의 산기슭에는 민가와 향경노원(鄕敬老院)이 있으며, 마선에는 석묘촌으로 통하는 도로가 묘장 동변을 통과한다. 묘장의 남북 양측 모두 평탄한 골짜기로 남측은 경작지이며, 북측은 마선 중학교가 있다. 서측 대지 아래쪽으로 탁 트인 마선하곡이 있으며 북쪽에서 내려는 마선하는 고분 서남 500m 정도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두 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제1차 조사는 1966년에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에 의해 이루어졌다. 통구 고분군에 대한 조사와 측량을 하였으며, 이때 제2100호묘[JMM2100]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2차 조사는 2003년에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와 집안시 문물보관소에 의해 이루어졌다. 집안 고구려 유적의 환경 복원 작업 중에 마선구 2100호 고분의 상세한 조사와 측량 및 발굴이 진행되었다. 조사 정리 과정에서 금기(金器)·철기(鐵器)·기와 등 550여 건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마선구 2100호 고분은 통구 마선 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묘장으로 주변에 여러 왕릉급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높이가 6m이고, 서변은 32.2m, 남변은 29.6m, 북변은 33m이다. 현재 4단의 계단이 남아 있다. 고분 상단과 네 경사면에는 기와편들이 산재해 있다. 고분 주변 계단 바깥쪽으로 자갈층을 깐 보호 시설[산수(散水)]이 존재한다. 고분 남쪽 200m 거리의 평지에 건축 유적이 존재한다.
제1차 출토 유물은 금기[보요 장식], 도금기[마형 투조 장식, 봉황 투조 장식], 동기, 철기[거울·창], 기와[회색], 토기[시유 도기 1점, 손잡이가 네 개 달린 항아리 4점, 항아리 1점], 청자편, 와당 3점[새털구름무늬]이 있다.
제2차 조사에서는 더 많은 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총 550여 건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유물의 대수는 서측과 북측에서 출토되었다. 금기, 금동기, 피혁, 시유 토기, 청자기 잔편, 와당·기와편 등이 있다. 특히 철제 거울[철경(鐵鏡)], 철창[철모(鐵鉾)], 투조(透彫)한 말 모양[금동마형누공(金銅馬形鏤空)]의 금동 장식 조각, 투조(透彫)한 봉황 모양의 금동 장식 조각, 순금의 비녀[보요(步搖)] 장식이 주목된다.
마선구 2100호 고분은 방형의 계단식 돌무지 돌굴무덤[적석 광실묘]이다. 남측 묘변의 방향이 218로 서편향 38°도이다. 지표로부터 높이 6m이다. 동변 길이 33m, 서변 길이 32.2m, 남변 길이 29.6m, 북변 길이 33m이다. 고분의 계단은 기초석·제1단~제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묘정은 현재 평대(平臺)이며 남북 길이 18m, 동서 너비 11m 정도이다. 대체로 장방형이며 중간은 사면 둘레보다 낮으며, 서측 북단에는 너비 2m의 입구가 있다. 묘정은 심각히 파괴되어 무덤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고분 아래에는 기와 조각이 서면·남면·북면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무덤 위에 건축물이 있었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무너져 내린 것으로 짐작된다.
마선구 2100호 고분은 묘장 형식상 우산 992호 고분과 비슷하며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형태이다. 묘장에서 나온 철제 거울의 제조 및 문양·장식, 밀집파상선문 시유도기호는 명확한 시대적 특징을 지녀 4세기대로 편년할 수 있다. 특히 대량의 황금 장식품이 출토되어 무덤 주인의 신분이 국왕급의 인물임을 짐작하게 한다. 옻칠한 거울과 금장식된 철 칼은 중국 삼국 시대~위진 남북조 시대 귀족의 표지성 물품으로 이 역시 이 고분이 왕릉임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하여 무덤 주인을 봉상왕 혹은 소수림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데, 출토 유물을 통해 보건대 대체로 소수림왕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