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山城下 磚廠 1號 古墳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 |
|---|---|
| 양식 | 계단식 돌무지돌굴무덤[계단적석석광묘] |
| 크기(높이 | 동서 길이 29m, 남북 길이 35m, 중간 높이 약 3m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6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 소재지 | 길림성 집안시 성후촌 |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산성하 고분군(山城下古墳群)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무덤.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은 산성하 고분군의 5개 구역 중 하나인 전창편(塼廠片) 내에 있는 무덤이다. 3세기 후기에 축조된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은 산성하 고분군의 최남단인 성후촌(城後村) 전창편(塼廠片)에 소재하며, 집안국내성 북쪽 1㎞ 거리의 우산(禹山) 서쪽 기슭의 산비탈 중간부에 독립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통구하(通溝河)가 고분 동쪽 언덕 아래에서 북에서 남으로 흘러간다. 고분은 북쪽으로 우산에 기대어 있고, 남쪽으로는 성후촌 홍전창(紅塼廠)을 사이에 두고 국내성(國內城)과 서로 바라보고 있다.
1966년 길림성 박물관, 집안현 문물보관소에서 조사하고 산성하 1호 고분으로 편호하였다. 1997년 길림성 박물관,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집안시 박물관에서 조사하면서 편호 중복 현상으로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으로 개편하였다. 2003년에는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집안시 박물관에서 조사하면서 고분 사면 둘레의 일부 기단과 묘실 위치의 도굴갱을 정리 조사하여 고분의 형식, 구조, 규모, 연대 등을 확인하였다.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은 계단식 돌무지 돌굴무덤[계단 적석 석광묘(階壇積石石壙墓)]로 동서 길이 29m, 남북 길이 35m, 중간 높이 약 3m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굴방[광실(壙室)] 안에서 토기, 도금 청동기, 철갑편, 소량의 새끼줄 무늬[승문(繩文)] 기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陶器)는 구연부(口緣部) 1건, 기저부(基底部) 1건, 손잡이부 2건, 문식 토기편 2건 등 확인되었고, 금동기[동질류금기(銅質鎏金器)]는 보요식 8건이 확인되는데 모두 불완전한 형태이다. 철기는 허리띠고리 2건, 장구 5건, 철촉 1건과 다수의 찰갑편이 확인되었다. 기와편은 1건이 확인되었는데, 소성도는 높지 않다.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의 계단은 동측에 3단, 북측에 2단이 보존되어 있으며, 서측과 남측에는 아직 전면적인 정리를 하지 않아 정황이 상세하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온존히 보존된 상태이다. 고분 중앙의 도굴갱은 정리 후에 남북으로 배열된 2개의 광실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굴방 주변에는 화산암인 용석(鎔石)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의 석광 구축 정황은 가장 늦은 시기의 계단에 속한다. 묘장의 외부 축조 계단의 석질은 이미 가공을 거친 장대석이며, 그 축조법은 이미 성숙한 계단에 진입하였다. 산성하 전창 1호 고분의 구조와 석광에서 출토된 유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3세기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의 동남 25m 거리에서는 건축 유지가 있고, 묘장 동측에서는 홍색 마름모 형식의 암키와가 발견되었다. 이는 태왕릉(太王陵)·천추총(千秋塚) 등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며, 해당 고분이 홀로 높은 곳에 위치한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고구려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