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禹山下 2110號 古墳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고분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우산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고분 |
|---|---|
| 양식 | 장방형 계단적석묘 |
| 크기(높이 | 남북 길이 66.5m, 동서 너비 45m, 현존 최고 높이 3.5~5.5m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13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8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6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4월 |
| 소재지 | 길림성 집안시 태왕진 우산촌 |
| 출토 유물 소장처 | 길림성 집안시 영빈로 249호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 태왕진(太王鎭) 우산촌(禹山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우산하 2110호 고분은 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의 6개 권역 중 하나인 우산하 고분군(禹山下古墳群) 내에 있는 무덤이다. 우산하 고분군의 중심이 되는 자리에 놓여 있어 고구려의 왕릉급 무덤으로 보고 있다.
우산하 2110호 고분은 태왕진 우산촌 2조 거민구(居民區)의 통구 고분군 우산하 묘구 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우산 남쪽 기슭 중단부의 완만한 비탈과 평지의 교착점이다. 북쪽으로는 통구-집안 철로와 280m의 거리가 떨어져 있으며, 동쪽 80m 거리에는 우산 2112호 고분이 있다. 동남쪽으로는 태왕릉(太王陵)과 임강총(臨江塚)이 보이고, 동북면에는 직선거리로 불과 100m 지점에 우산하 992호 고분이 있다.
우산하 2110호 고분은 장방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남북 길이 66.5m, 동서 너비 45m, 현존 최고 높이 3.5~5.5m이다. 장축 방향은 150°이다. 동변에 평행하여 16m 가량 떨어져 제단이 만들어져 있다.
우산하 2110호 고분의 출토품으로는 동측 중간부에서 나온 수레바퀴 비녀장(鏤空三翼銀箍鐵鏃)과 청동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수레바퀴 비녀장[청동인형거할(靑銅人形車轄)]이 주목된다. 그 밖에 철제 화살촉과 못, 휘장고리기와 토기부, 방추 등과 함께 다수의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개별 유물의 출토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산하 2110호 고분은 외관이 심각하게 파괴된 상태로 만주국(滿洲國) 시기 일본인이 고분 정상에 시멘트 기념비를 세웠다. 또한 신 중국 수립 후 고분이 들어선 지역에 거주민 밀집구가 조성하면서 점차 훼손되었다. 현재는 고분 표면의 거대한 석재 등이 다수 보이지 않으며 외관의 변화가 심하고 기와편들이 고분 정상부와 그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우산하 2110호 고분과 16m 정도 떨어져 제대(祭臺)[제단]로 추정되는 시설이 발굴되었다. 이런 유형의 유적은 임강총의 동측, 우산하 992호 고분의 동측, 태왕릉 및 서대총(西大塚) 동측 등의 왕릉 부근 모두에서 발견된다. 또한 우산하 2110호 고분 북쪽은 우산에 기대어 평야에 인접해 있고, 주위 벽화 고분과 흙무지무덤이 해당 고분의 좌우를 둘러싸고 있어 우산하 2110호 고분이 중심이 되는 능구(陵區)를 형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분의 형태와 부장품, 무덤 위의 기와 등으로 볼 때 고구려 왕릉임이 확실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