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선구 626호 고분

한자 麻線溝 626號 古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마선향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계장 광실묘
관련인물 산상왕|대무신왕
크기(높이 높이 6m
지름) 북변 42m, 서변 42m, 동변 41m, 남변 48m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0년대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0년대 말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5월∼7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2005년
소재지 길림성 집안시 마선향 건강촌 북쪽 400m 지점
정의

길림성 집안시 마선향에 있는 통구 고분군 산하 고구려고분.

위치

마선구 고분군은 길림성 집안시 마선향 건강촌 북쪽 400m 지점에 있는 언덕에 자리한다. 고분의 서남쪽으로 600m를 가면 서대총이 있고, 동남쪽으로 1.3㎞ 지점에는 천추총이 자리하고 있다. 고분 남쪽 600m 지점에는 집안-단동 간 도로가 지나며 동쪽 500m 지점에서는 마선하(麻線河)를 만날 수 있다. 고분의 중심 지리 좌표는 동경 126°7′52.66″, 북위 41°5′59.51″이며, 해발 고도는 227.46m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0년대 집안현 문물보관소가 고분에 대한 조사 작업을 시작하였다. 1966년에는 길림성 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가 통구 고분군에 대한 일제 조사 및 측량, 제도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선구 626호 고분에 통구 고분군 마선 묘구 제0626호묘[JMM0626]라는 편호를 부여하였다.

1970년대 말 고구려의 주요 왕릉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마선구 626호 고분 역시 조사의 대상이었다. 2003년 5월부터 7월까지는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와 집안시 문물보관소는 마선구 626호 고분에 대한 조사와 주변 환경 정리를 진행하였다. 이 조사에는 집안시 문물보호관리소의 지용(遲勇)이 현장 책임을 맡았고 진뢰현(鎭賚縣) 문물보호관리소의 이경영(李景永), 전곽현(前郭縣) 문물보호관리소의 경아남(景阿男) 등이 참여하였다. 2004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장복유(張福有)·손인걸(孫仁杰)·지용(遲勇) 등이 마선구 626호 고분을 정밀 조사하였다.

형태

마선구 626호 고분은 평면형이 정방형에 가까우며 전원후방형(前圓後方形)으로 보기도 한다. 긴축이 서북-동남 방향으로 놓였다. 고분의 규모는 각 변의 길이가 각각 북변 길이 42m, 서변 길이 42m, 동변 41m, 남변 길이 48m이며, 높이 6m이다. 고분의 축조에는 계장식과 계단식 방식이 함께 사용되었다.

고분의 상부는 발굴과 단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의 돌무지 구조와 계장 안쪽의 높이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 확인된 계장은 모두 6단, 20줄이다. 계장은 순서대로 쌓았고 틈새를 메웠으나 치밀하지는 않다. 계장에 사용된 석재의 크기 역시 동일하지 않다. 석재는 주로 화강암, 산자갈을 사용하였다. 단순하게 가공하거나 납작하게 쪼개어 썼으므로 절대 다수의 석재에 깨진 면이 있다.

하부 계장에 쓰인 돌은 크기가 큰데 대개 길이 0.6∼0.9m, 너비 0.3∼0.4m, 두께 0.2∼0.4m이다. 반면 상부 계장에 쓰인 돌은 비교적 작은 편으로 길이 0.5m, 너비 0.3∼0.4m, 두께 0.1∼0.2m 정도이다.

동쪽 면에는 6개의 단을 쌓았으며 그 중 동남 모서리의 제1단이 가장 잘 남아 있다. 이 기단 밖에는 보호석이 기대어 있다. 제2단은 남과 북 양쪽에 남아 있으며 그 길이는 각각 6m가량이다. 제2단은 제1단에서 안으로 2.4∼3m정도를 들여쌓았으며 높이는 0.5m이다. 제2단의 양 끝은 남쪽 면 제2단과 북쪽 면 제4단과 연결되어 있다. 제3단부터 제6단까지는 모두 동남 모서리에만 보이는데 길이가 2.5∼5m이고 각 단의 간격은 2∼2.5m이다.

남쪽의 단은 고분 천정 돌에 의해 덮여 있었으며 동남 모서리에서 6단이 드러났다. 제1단은 동쪽 끝이 동쪽의 제1단과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는 18m, 높이는 1.8m이다. 서쪽 끝 역시 서쪽면의 제1단과 둥글게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는 2m이다. 제2단은 제1단에서 2.5∼3.5m 간격을 두고 0.5m 높이에 있다.

동쪽 끝은 동쪽면의 제2단과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는 15m이다. 제3단의 동쪽 끝은 동쪽면의 3단과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쪽 끝은 서쪽 면 제3단의 위에 놓여있다. 동쪽 끝이 제2단과 1.5∼2m의 9m 길이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면, 서쪽 끝은 제2단과 1.5∼2m 간격으로 두고 0.4∼0.6m 높이에 11m의 길이로 호형(弧形)을 이루고 있다. 제4, 5, 6단은 2m 정도의 간격을 두고 0.4∼0.6m 높이에 1.5∼5m의 길이로 동쪽 면 같은 층의 기단과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북쪽 면에는 5개의 단이 있다. 아래 3단까지는 동쪽, 서쪽 면과 연결되어 있다. 제1단의 경우 동쪽끝 부분이 잘 남아 있으며 동쪽 면과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높이는 0.8m이다. 이 기단의 바깥쪽에는 판돌로 된 보호석이 기대어 있다. 서쪽 끝은 좀 무너졌는데 역시 서쪽 면과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높이는 0.2∼0.4m이다. 제2단은 제1단과 3m 정도 간격이 있으며 0.5m 높이에 길이 24m가 남아 있다. 제3단은 동쪽에서만 나타났으며 동쪽면의 제1단 위에 놓여 있다. 제4단, 5단 역시 동쪽에서만 보이며 다른 단과의 연결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각 단의 거리는 1.5m이다.

서쪽 면에는 5개의 기단이 있다. 제1단이 남, 북면의 단과 연결되어 있을 뿐 나머지 기단이 다른 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파괴가 심해 알기가 어렵다. 제1단의 크기는 길이 34m, 높이 1.4m이다. 제2, 4, 5단은 고분의 서남 모서리에서 보이며 각 단 사이의 거리는 3∼4m, 길이는 1.5∼4m이다. 제2단은 고분의 서북 모서리에서 제1단과 6m 정도 거리를 두고 2m 높이로 3.5m 길이로 남아 있다.

고분 남쪽의 보조 기단은 동과 서 두 구역으로 나뉘어 남측 계장과 연결시켜 쌓았다. 서쪽 보조 기단의 평면형은 반원형(半圓形)이다. 기단에 사용된 돌의 크기는 대개 길이가 0.6m에 높이가 1.3∼1.5m 정도이다. 서쪽 끝은 고분의 서남 모서리에서 시작되었으나 윗부분의 판돌은 서남 모서리를 꿰뚫고 있다. 서쪽 단의 동쪽 끝은 고분의 남쪽 면 1단 위에 놓여있다. 즉 양쪽 단이 남쪽면의 기단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동쪽의 보조 기단은 평면형이 제형이다. 축조 방식은 서쪽 보조 기단과 같다. 동쪽 끝은 주기단 1단의 연장으로 다섯 겹으로 겹쳐 쌓았는데 높이가 0.6m이다. 동남 모서리에는 화강암 판돌이 기대어 있으며 그 크기는 높이 1m, 너비 0.7m, 두께 0.15m 이다.

무덤 윗부분과 아래 표면에 기와편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묘상에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6계장 이상부터는 묘장 서면에서는 계단 혹은 계장이 다시 보이지 않는다. 이를 보면 고분의 꼭대기는 평평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광실(廣室)은 평탄면 위에 축조되었을 것이 확실하나 막상 분구 정상부는 허물어져서 구덩이가 많이 생겼다.

무덤 정상부의 구덩이에서는 용석(鎔石)과 기와편이 다량 수습되었으며 일부 용석은 기와와 붙어있는 것도 있다. 특히 분구 정상의 여러 구덩이 가운데 북쪽 구덩이와 가운데 구덩이에서 집중적으로 나왔으며 남쪽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광실은 없어져서 현재 자세한 구조를 알 수 없다.

제대는 고분 동쪽 20m 지점에 위치하며 크기는 길이가 42m, 너비가 9m, 높이는 0.9m이다. 바깥 둘레를 2층으로 쌓아 올리고 안쪽에 강돌과 부순 돌을 채웠다. 다른 왕릉급 고분의 예에서 보면 이 대(臺)는 제사 관련 유적으로 보인다. 쇠로 된 거할(車轄), 토기의 구연부 등이 여기서 발견되었다.

고분의 동쪽 기단과 제단 사이에 산돌을 깔아 놓았다. 산돌은 자연석이며 크기는 약 0.3∼0.4m 정도이다. 중간에 끊기고 돌을 깐 표면이 정교하는 못하지만 칠성산 871호 고분에서도 비슷한 예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초기 왕릉의 특수한 시설로 보고 있다. 아마도 묘역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고분의 서변 북쪽에서 일찍이 배장묘 1기가 보존되었다. 형식은 이른 시기의 원형 적석묘이며 분구 높이는 대략 2m이다.

출토 유물

마선구 626호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기와편, 철기류로 나눌 수 있다. 토기로는 항아리 입구 부분이 발견되었다. 제대 부근에서 수습되었으며 색깔은 회갈색이다. 무늬는 없고 손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입구가 곧고 입술 부분이 방형이다. 남은 부분의 직경은 20.8㎝이다. 또한 고분에서 도기(陶器) 파편이 발견되었다. 문양은 없고 회백색이며 불에 타서 형태가 이지러졌다. 남은 부분의 직경은 20.8㎝이며 짧은 손잡이가 있다. 기와편은 모두 고분에서 수습되었다. 암키와는 색깔이 회색이거나 홍갈색이며 바깥 면에 새끼줄 무늬[승문(繩文)] 혹은 손으로 누른 자국[지두문(指頭紋)] 등이 있다. 수키와 역시 대부분이 회색으로 겉면에 승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철기로는 거할(車轄), 못, 꺾쇠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거할은 제대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는 14.8㎝, 너비는 2㎝, 두께는 0.8㎝이다. 단련하여 만들었으며 몸체는 납작하며 길고 얇은 형태이다. 윗부분은 말아져서 세 겹이 되었으며 아랫부분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못은 북쪽 용석(鎔石)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몸통은 방형이고 대가리는 우산 모양이다. 뾰족한 부분은 잘려 나갔다. 못의 남은 길이는 7.6㎝이며 몸통의 너비는 0.6㎝, 대가리의 직경은 2.8㎝이다. 꺾쇠 역시 북쪽 용석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납작하고 긴 형태이며 양쪽 못 부분이 밖으로 살짝 휘어서 팔(八)자와 같이 보인다. 전체 길이는 6㎝, 너비는 1.2㎝, 못 부분의 길이는 4.2㎝이다.

화살촉도 북쪽 용석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몸통은 규(圭)와 같은 모양이며 뾰족한 부분은 사각추 형태이다. 전체 길이는 17㎝, 뾰족한 부분은 6.4㎝이다.

의의와 평가

마선구 626호 고분은 축조 방식에서 계장식과 계단식을 결합하고 보조 기단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1∼2세기 고분으로 보인다. 그 규모나 부속 시설은 마선구 626호 고분이 왕릉급 무덤임을 말해준다. 중국 학계에서는 고분의 축조 방식, 위치 등을 고려하여 고구려의 이른 시기 왕릉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특히 장복유는 대무신왕릉에 비정하고 있다. 임기환은 왕릉급 고분의 지리적 위치, 축조 편년을 장지명과 재위 시기 등과 대응하여 검토하고 마선구 626호 고분을 산상왕릉에 비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모모자키 유스케[桃崎祐輔] 역시 산상왕릉에 비정하였다. 구체적인 비정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고구려의 이른 시기 왕릉이라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마선구 626호 고분고구려고분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묘상에서 기와 외에도 용석이 다수 발견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용석의 일부는 기와와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고분의 북측 계장 밖에는 용석을 부순 뒤 작은 산돌과 섞어 원형으로 만든 돌무지 여러 개 있다. 이러한 용석과 관련된 내용은 고구려의 장례 풍속과 관련해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참고문헌
  • 『集安縣文物志』,吉林省文化廳, 1984
  •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집안시 박물관 편저,『통구 고묘군』(과학 출판사, 2002)
  • 길림성 문물 고고 9연구소·집안시 박물관 공편, 『집안 고구려 왕릉』(문물 출판사, 2004)
  • 장복유, 『고구려 왕릉 통감』(홍콩 아세아 출판사, 2007)
  • 장복유·손인걸·지용, 『고구려 왕릉 통고』(홍콩 아세아 출판사, 2007)
  • 장복유·손인걸·지용, 「고구려 왕릉 통고 요보」(『동북 사지』 2007-4)
  • 孙仁杰·迟勇, 『集安高句麗墓葬』(香港亞洲出版社, 2007)
  • 임기환, 「고구려의 장지명 왕호와 왕릉 비정」(『고구려 왕릉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 모모자키 유스케, 「고구려 왕릉 출토 기와·부장품으로 본 편년과 연대」(『고구려 왕릉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9)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구려의 돌각담무덤』진인진, 2009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