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 고분군

한자 萬寶汀 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2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4년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통구 분지 일대
정의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통구 분지 일대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군.

개설

만보정 고분군(萬寶汀古墳群)통구 고분군(通溝古墳群) 6개 구역 가운데 하나이다. 무덤 1,000여 기가 분포하며, 통구 고분군 가운데 하해방 고분군(下解放古墳群) 다음으로 개체수가 적다. 왕릉에 비정할 만한 고분은 없지만, 만보정 242호 고분, 5세기 전반의 만보정 1078호 고분, 만보정 1368호 고분 등이 주목된다.

위치

만보정 고분군은 산성자 산성의 서남쪽, 칠성산의 동록, 통하 유역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만보정 고분군만보정 1078호 고분, 만보정 242호 고분, 만보정 1368호 고분, 만보정 2265호 고분, 만보정 2164호 고분이 발굴되었다.

형태

만보정 고분군의 대표적인 벽화 고분으로 만보정 1368호 고분이 있다. 이 고분은 산성자 산성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서편에 있다. 흙무지 돌방무덤으로, 외형은 절두방추형이다. 무덤 내부는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 무덤으로, 널길이 널방의 가운데가 아니라 동쪽 벽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무덤의 방향은 서로 14 기운 남향을 향하고 있다. 널방 천장은 궁륭식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의 벽면에는 검은 색으로 기둥과 들보만을 그려 실내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전복(李殿福)은 이 고분을 초기의 옆트기식[횡혈식] 석실로서 3세기 중엽 내지 4세기 중엽으로 편년했다. 널방 네 벽의 윗면에는 벽마다 쇠못을 박았다. 북벽에는 9개가 일정치 않은 간격, 서벽에는 6개가 32~62㎝ 간격, 동벽에는 2개, 남벽에는 4개가 49~69㎝ 간격으로 박혀 있다. 이 쇠못은 위로 구부러진 점으로 보아 만장(輓章)의 걸이용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덤 안 전면에 백회를 입히고 널방 벽과 천장 고임에 검은 색으로 기둥과 들보가 그려 졌다. 동·서·북벽 중앙에 각기 1개, 네 귀퉁이 1개로 모두 8개의 기둥과 들보로 건물 내부를 표현했다.

만보정 78호 고분은 돌무지무덤이다. 1972년 우연히 발견되어 1974년 전면적으로 조사, 정리되었다. 외형은 한 변의 길이가 17m인 방형으로 무덤 둘레를 따라 큰 돌로 단을 구성하고, 네 모서리는 높이가 1.8m가 되는 큰 돌을 사용했다. 기단 외부에 큰 돌을 기대어 놓았던 것으로 보이고, 원래는 널길이 마련된 외방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윗부분이 무너져 분명치 않다. 널방에서는 시루·물동이·항아리·양동이 등의 토기편이 수습되었고, 널길 양쪽에는 금동말안장·발걸이·띠고리·말재갈·말띠꾸미개·말띠드리개 등 다수의 말갖춤 유물이 출토되었다.

만보정 242호 고분은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4기의 돌무지무덤이 남북으로 연결되었다. 전체 남북 길이는 50m에 달하는데, 장군총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무덤 보호석이 한 변에 10개 이상 마련되거나 2단에 보호석을 나란히 세우기도 했다. 이 무덤에서는 금동제의 말안장 뒷가리개로 보이는 조각, 은을 입힌 쇠못, 재갈, 거울판, 띠고리 등이 수습되었다.

의의와 평가

만보정 고분군통구 고분군 가운데서 하해방 고분군 다음으로 개체수가 적다. 왕릉에 비정할 만한 고분은 없다.

참고문헌
  • 이형구·조유전·윤세영·차용걸, 『고구려의 고고 문물』(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1996)
  • 東潮, 『高句麗考古學硏究』(吉川弘文館, 1997)
  • 李殿福, 「集安洞沟三座壁画墓」(『考古』1983-4, 1983)
  •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사계절,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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