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望波嶺 關隘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상진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성곽 |
|---|---|
| 양식 | 관애 |
| 크기(높이 | 1.5~2.5m |
| 길이 | 750m |
| 문물|보호단위등급 | 시급 중점문물보호단위 |
| 현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삼가자댐 부근N : 41°15'30.95" E : 125°51'28.93"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부근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
망파령 관애는 망파령에서 뻗어나와 협곡을 가로막고 있는 용두령의 등성이에 축조되어 있다. 석축으로 된 성벽으로 계곡을 차단하였으나, 많이 허물어졌다. 성벽 기저부의 너비는 10m, 잔존 높이는 1.5~2.5m이다. 성벽 북단은 쌍차하에 잇닿아 있고, 성벽 아래쪽 강변에는 돌로 제방을 쌓았는데, 잔존 길이 13m, 높이 0.5~0.8m이며, 현재 삼가자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용두령의 동남단에는 90m가량을 강돌로 쌓은 다음 진흙을 10~20㎝ 두께로 덧쌓아 보수한 흔적이 확인된다. 강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벽의 상단 너비는 1.5~2.5m로 비교적 넓다. 망파령 남단 부분의 경우, 망파령에서 이어지는 7개의 산봉우리 사이의 구릉지에도 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하였다. 잔존 높이는 2.5m이며, 9단 가량의 석축이 남아 있다.
1931년에 간행된 『집안현지』에 망파성(望波城)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일찍부터 관애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60년대 초반과 1983년에 중국측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6년에 건설된 삼가자댐으로 인해, 용두령 서북단의 관애와 용두령과 망파령 사이 구릉 저지대의 관애 일부가 수몰되었다. 댐 건설 이후 도로가 새로 나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망파령 서북단 관애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다. 성벽 주변에서는 철촉과 등자, 자물쇠와 같은 철기류와 토기편 등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현재 시급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