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파령 관애

한자 望波嶺 關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상진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관애
크기(높이 1.5~2.5m
길이 750m
문물|보호단위등급 시급 중점문물보호단위
현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삼가자댐 부근N : 41°15'30.95" E : 125°51'28.93"
정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부근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

정의

망파령 관애국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군사 방어 시설이다. 성벽 주변에서 철촉과 등자, 자물쇠와 같은 철기류와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되고, 망파령 남쪽 기슭에 돌무지무덤 1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1976년에 삼가자댐의 건설로 인해 관애 일부가 수몰되었다.

건립 경위

망파령 관애는 혼강(渾江) 유역에서 노령 산맥(老嶺山脈)을 넘어 고구려 두 번째 수도가 있었던 국내성으로 향하는 교통로 가운데 가장 평탄한 신개하(新開河)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신개하 하구에는 패왕조 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쌍차하를 거슬러 올라가면 관구검 기공비(毌丘儉紀功碑)가 발견된 소판차령(小板岔嶺)이 나온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망파령 관애는 고구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망파령 관애집안시 서북쪽 50㎞ 거리의 삼가자댐 부근에 위치한다. 망파령 산줄기는 대체로 동남에서 서북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서북향 산줄기의 끝지점에는 용두령이라는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가 강쪽으로 돌출하여 병풍처럼 협곡을 가로막고 있다. 세차게 북류하던 쌍차하(雙岔河)는 앞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돌아나가며, 강 건너편에는 가파르게 우뚝 솟은 산이 이어진다.

형태

망파령 관애는 망파령에서 뻗어나와 협곡을 가로막고 있는 용두령의 등성이에 축조되어 있다. 석축으로 된 성벽으로 계곡을 차단하였으나, 많이 허물어졌다. 성벽 기저부의 너비는 10m, 잔존 높이는 1.5~2.5m이다. 성벽 북단은 쌍차하에 잇닿아 있고, 성벽 아래쪽 강변에는 돌로 제방을 쌓았는데, 잔존 길이 13m, 높이 0.5~0.8m이며, 현재 삼가자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용두령의 동남단에는 90m가량을 강돌로 쌓은 다음 진흙을 10~20㎝ 두께로 덧쌓아 보수한 흔적이 확인된다. 강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벽의 상단 너비는 1.5~2.5m로 비교적 넓다. 망파령 남단 부분의 경우, 망파령에서 이어지는 7개의 산봉우리 사이의 구릉지에도 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하였다. 잔존 높이는 2.5m이며, 9단 가량의 석축이 남아 있다.

현황

1931년에 간행된 『집안현지』에 망파성(望波城)에 대한 기록이 있어, 일찍부터 관애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60년대 초반과 1983년에 중국측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6년에 건설된 삼가자댐으로 인해, 용두령 서북단의 관애와 용두령과 망파령 사이 구릉 저지대의 관애 일부가 수몰되었다. 댐 건설 이후 도로가 새로 나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망파령 서북단 관애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다. 성벽 주변에서는 철촉과 등자, 자물쇠와 같은 철기류와 토기편 등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현재 시급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망파령 관애는 험준한 산세를 따라 차단벽을 구축하여 혼강에서 신개하를 거슬러 집안으로 통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에 위치한 군사 방어 시설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망파령 관애가 신개하 하구에 위치한 패왕조 산성과 함께 신개하 일대에서 고구려 도성의 외곽 방어선을 구축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관구검 기공비가 망파령에서 신개하를 거슬러 집안으로 향하는 노령 산맥 상의 분수령인 소판차령에서 발견된 것으로 볼 때, 망파령 관애국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1984)
  • 여호규, 「집안 망파령 관애」(『고구려 성』I, 국방 군사 연구소, 1998)
  • 王綿厚, 『고구려 고성 연구』(문물 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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