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石湖 關隘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석호진 공익촌 |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 성격 | 성곽 |
|---|---|
| 양식 | 관애 |
| 관련인물 | 모용황(慕容皝) |
| 크기(높이 | 1.5~2.5m |
| 길이 | 400m |
| 현 소재지 | 길림성 통화시 석호진 공익촌N : 41°29'1.20"E : 126°18'54.60" |
길림성 통화시 석호진 공익촌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
석호 관애는 고구려 시기에 조성된 토석 혼축의 관애로서 통화에서 집안으로 통하는 주 도로 상에 위치하고 있다.
석호 관애는 북쪽 20㎞에 있는 이도구문 관애(二道溝門關隘)와 함께 대라권구하를 거슬러 통구 분지로 향하는 교통로를 차단하는 입지에 조성된 것을 볼 때, 고구려국내성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석호 관애는 해발 900m의 높은 산 사이의 계곡을 가로질러 쌓았다. 토석 혼축으로 전체 길이 약 400m가량의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다. 관애는 남에서 서로 25°가량 기울어진 남북 방향이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12m이며, 정상부 너비는 1.5~3m 가량이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1.5~2.5m가량이다. 성벽 하단에 강돌과 깬돌 등으로 기초부를 다진 다음, 양쪽 가장자리에 비교적 큰 치석된 석재 등을 놓고 안쪽에는 흙과 잔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성벽 바깥쪽으로는 반원형 치 6개가 축조되어 있다. 반경이 5~6m가량이며, 토축이라고 보고되어 있으나, 치 하단부에 치석된 석재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치의 기초는 석축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성벽 바깥쪽 6m 지점에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참호 시설이 있는데, 깊이 2m, 위쪽 너비 8m, 아래쪽 너비 6m가량이다.
2012년 현재, 석호 관애의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다만 대라권구하가 지나가는 관애의 남단 부분은 많이 유실되었고, 지방 도로가 지나가는 중앙 부분과 철도가 지나가는 북쪽 부분도 성벽이 완전히 절단되었다. 한편 1958년 수로를 보수할 때 지방 도로가 지나가는 중간 부분의 땅 속 1.2m 지점에서 주춧돌(柱础石)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현재 지방 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이 당시 관애의 문 터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폭은 9m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