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구문 관애

한자 二道溝門 關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통화시 압원진 압원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관애
크기(높이 0.3~0.7m
길이 250m
현 소재지 길림성 통화시 압원진 이도구문둔N : 41°44'45.80"E : 126°12'10.60"
정의

길림성 통화시 압원진 이도구문둔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관애.

개설

이도구문 관애는 흙과 돌을 함께 다져 쌓은 토석 혼축이며, 자안 산성석호 관애와 함께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고구려의 관애이다.

건립 경위

이도구문 관애 주변에 자안 산성(自安山城)석호 관애(石湖關隘)가 위치해 있고, 혼강(渾江) 유역에서 대라권구하(大羅圈溝河)를 거슬러 통구 분지로 향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해 있는 점으로 볼 때 고구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이도구문 관애는 통화시 압원진에서 동쪽으로 2㎞ 떨어진 이도구문둔에 있다. 이도구문은 마주 보는 두 산 사이의 계곡을 끼고 있는데, 계곡 밖은 대라권구하 유역의 개활지이며, 계곡 안에서는 이도구하가 흘러나와 대라권구하로 유입된다. 관애의 서북 24㎞ 떨어진 곳에는 자안 산성이, 남쪽 34㎞ 떨어진 곳에는 석호 관애가 위치한다.

형태

이도구문 관애는 계곡 입구에서 안쪽으로 약 300m 들어온 지점에 토석 혼축으로 차단벽을 축조하였다. 차단벽은 현재 50m가량 미만으로 남아 있으나, 원래는 250m가량의 차단벽으로 추정된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0.3~0.7m가량이다. 험준한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계곡 입구에 성벽을 축조함으로써 방어선을 형성하였는데, 구조상 대체로 집안의 관마장 산성과 유사하다.

현황

1985년 조사 당시 관애의 북단은 채석장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차단벽의 흔적만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12년 현재, 관애 북단의 산줄기 절반 이상이 채석되어 성벽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채석으로 인한 깨진 석재들이 관애를 통과하는 도로 남쪽까지 흩어져 있어 관애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다만 이도구하 건너편의 남단 부분에서는 산줄기로 이어지는 관애의 외형을 일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의의와 평가

자안 산성석호 관애 중간에 위치한 이도구문 관애는 대라권구하를 거슬러 통구 분지로 향하는 교통로를 차단하던 관애로 파악된다. 다만 관애가 위치한 이도구문 계곡은 통구 분지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와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관애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성벽 안쪽의 계곡을 군사 시설로 활용하는 군사 방어성의 성격을 띠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통화시 문물지』에서는 이도구문 관애를 342년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皝)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등장하는 북도(北道)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참고문헌
  • 길림성 문물지 편찬위원회 편, 『通化市文物志』,1986
  • 여호규, 「통화 이도구문 관애」(『고구려 성』I, 국방 군사 연구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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