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南城子 古城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 지역 | 길림성 길림시 풍만구 강남향 영안촌 |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부여|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남북국 시대/발해 |
| 성격 | 성곽 |
|---|---|
| 양식 | 평지성|토성 |
| 길이 | 1,300m |
| 문물|보호단위등급 | 중국 국가중점문물보호단위인 모아산(帽兒山)무덤 유적에 포함 |
| 조성|건립 시기/일시 | 부여 전기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
| 현 소재지 | 길림성 길림시 풍만구 강남향 영안촌 동단산 |
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 강남향(江南鄕) 영안촌(寧安村)동단산(東團山) 남쪽에 있는 부여 시대의 산성.
남성자 고성이 위치한 동단산은 부여 전기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부여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자 고성의 평면은 불규칙한 타원형이며, 둘레 길이는 1,300m이다. 출토 유물로 보아 축조 시기는 부여 시대로 평면이 원형에 가깝다는 점에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東夷傳)에 소개된 부여의 ‘원책(圓柵)’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남성자 고성 내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성벽은 대부분 파괴되어 동남쪽 일부만이 남아 있다. 성문은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있으며, 남문지 부근에 남북으로 150m, 동서 73m, 높이 1.5m의 토대(土臺)가 남아 있다. 성벽 바깥쪽에는 해자를 설치했던 흔적이 보인다. 성벽의 잔고는 약 5∼6m이다.
부여 시대의 유물로는 ‘장락미앙(長樂未央)’이라는 글씨가 있는 기와 외에 토기·청동 장식품·오수전(五銖錢) 등이 출토되었으며, 붉은 색의 새끼줄 무늬[홍색승문(紅色繩文)] 기와·바둑판 무늬[방격문(方格文)] 기와 등 고구려의 유물도 나오고 있어,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한 이후에도 이 성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와 요·금 시대에도 이어서 사용되었다.
2012년 기준, 중국길림성 고고연구소가 주관하여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조사 내용의 보고서가 발간되면 부여사 연구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