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군

한자 大韓 獨立軍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항일 무장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19년 후반
개칭 시기/일시 1920년 3월 말
개칭 시기/일시 1920년 5월 말
개칭 시기/일시 1920년 7월
정의

1919년 의병장 출신 홍범도(洪範圖)가 연해주와 북간도 지역 한인 사회를 기반으로 조직한 독립군 부대.

개설

대한 독립군은 3·1 운동 이후 간도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로 홍범도가 그 중심 인물이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 만주 지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중심 단체이다.

설립 목적

대한 독립군’이란 명칭은 1919년 8월 초 연해주 지역을 출발할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한 독립군은 1919년 8월 말경 북간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병사와 무기·재원을 계속 보강하였고, 1919년 9월 초에는 구춘선이 이끄는 간도 대한 국민회의 재정적·인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후 병사들을 계속 징집·모집하여 부대 규모가 커지고 체제와 장비도 상당한 수준으로 정비되었다.

변천

1920년 3월 말 군무 도독부, 같은 해 5월 말 대한 북로 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같은 해 7월 동도 독군부(東道督軍府)로 소속과 명칭이 바뀌었다.

1920년 초반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하여 큰 전과를 거둔 대한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뒤 1920년 말경까지 대부분 노령으로 이동하여 새로이 ‘대한 독립군단’을 이루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 독립군 부대는 1920년 초반부터 최명록의 도독부 독립군 부대와 연합하여 대규모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하였다. 또 1919년 12월과 1920년 3월 각각 대한 독립군 명의의 유고문(諭告文)과 경고문을 발표하여 독립군 무장 투쟁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근거지 일대에서 다른 군소 단체들이 각종 명목 기부금 징수를 금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간도와 연해주, 국내의 두만강 일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경찰 보조원 및 기타 밀정에게 엄중히 경고하여 독립군으로서의 기개를 과시하기도 했다.

대한 독립군은 1920년 6월의 봉오동 전투와 같은 해 10월의 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대한 독립군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뒤 1920년 말경까지 대부분 노령으로 이동하여 새로이 대한 독립군단을 이루었다.

의의와 평가

대한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명의상으로는 몇 차례의 변화를 거치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920년대 초반 한민족의 항일 무장 투쟁을 주도함으로써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참고문헌
  • 장세윤, 『홍범도-생애와 독립전쟁』(독립기념관, 1997)
  • 신용하,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의 항일무장 투쟁」,(『한국 근대민족운동사 연구』, 일조각, 1988)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