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3·20 琿春 反日 示威 鬪爭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항일 독립운동 |
|---|---|
| 관련인물/단체 | 황병길, 임도준, 최병문, 김정규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20일 |
| 발생|시작 장소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현 |
| 종결 장소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현 |
1919년 3월 국내 3·1 운동의 영향 하에 길림성 혼춘현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
국내 3·1 운동의 영향 하에 혼춘 지역에서 3월 20일부터 4월 1일 까지 황병길 등 애국 지사를 중심으로 혼춘 지역의 한인들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0일 혼춘 시가지에 운집한 5,000여 명의 군중들은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들고 동문을 거쳐 서문 광장에 모여들었으며 시가지의 조선족 동포들은 아침부터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었다. 한편, 상인들은 철시(撤市)를 통해 민중 대회를 적극 지지하며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였다. 민중 대회에서 황병길·최병문(崔秉文)·김정규(金貞奎) 등이 군중들에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고, 연설이 끝난 후 시위대는 혼춘강 기슭에까지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뒤 10일이 지난 3월 30일에 황병길은 혼춘현 한덕자(漢德子)에서 한인 군중들에게 독립운동에 대해 열변을 토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 4월 1일에는 혼춘현 탑도구(塔道溝)에서 황병길의 주도로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사타진구에서도 시위대가 ‘두만강을 건너서 국내까지 밀고 들어가자’라고 외쳐 일제를 긴장시켰다.
『독립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3·20 혼춘 반일 시위 투쟁은 47개소에서 전개되었고 참가한 인원은 15,087명에 부상자와 체포된 인원은 10여 명이었다고 한다.
3·20 혼춘 반일 시위 투쟁은 혼춘 지역에서 전개된 가장 대표적인 만세 시위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