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하 전투

한자 紅旗河 戰鬪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대마록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0년 3월 11일
종결 시기/일시 1940년 3월 25일
발생|시작 장소 안도현(安圖縣) 대마록구(大馬鹿溝)
정의

1940년 3월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제2방면군이 안도현 대마록구(大馬鹿溝)에서 화룡현 경찰서의 마에다[前田武市] 토벌대를 섬멸한 전투.

역사적 배경

1930년대 후반 동북 항일 연군에 대한 만주국 및 일본 군경의 탄압이 강화되자 남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동북 항일 연군 제2방면군은 1940년 초 동만 지역의 두만강 상류 일대로 진출하였다.

경과

동북 항일 연군 제2방면군의 병력은 약 150명이었는데, 대부분 재만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제2방면군은 1940년 3월 11일 밤 안도현 대마록구에 있던 일본인 목재소와 그곳을 지키던 만주국 산림 경찰대를 습격하여 10여 명을 살상하고 현금 약 1만원 및 무기·식량·군수 물자를 노획한 후 퇴각하였다.

이에 ‘남동부 치안 숙정 공작’을 추진하고 있던 관동군 사령부는 화룡현 경찰대의 마에다 중대와 일본군 2개 중대를 출동시켜 추격대를 편성하였으며, 이들 중 경방대대(警防大隊) 산하의 마에다 추격대는 제2방면군을 끈질기게 추적하였다.

결과

일본군의 추격을 예상하고 있던 제2방면군은 홍기하 상류의 세 갈래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세 곳의 고지에 매복하여 일본군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3월 25일 마에다 토벌대의 145명이 3명의 밀정을 앞세우고 매복 지점에 완전히 들어오자, 제2방면군은 사방에서 일본군을 향해 맹렬히 사격을 가하여, 약 1시간 가량 지속된 전투에서 마에다 토벌대의 중대장 이하 105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밖에 제2방면군은 권총 6정 소총 100여정·무전기 1대·탄약 수 천발을 노획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제2방면군도 정치부 주임여백기(呂伯岐) 등 12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었다.

의의와 평가

홍기하 전투는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이 일본 군경의 토벌이 심화되었던 매우 어려운 시기에 동만 지역에서 거둔 대표적인 승전의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홍기하 전투는 김일성이 지휘한 것으로 유명한 전투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姜德相 編, 『現代史資料』 30(みすず書房, 1976)
  • 김동화 외, 『연변 당사 사건과 인물』(연변인민출판사, 1988)
  • 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한국 독립운동사 사전』독립 기념관, 2004
  • 조선족 약사 편찬조, 『조선족 약사』(백산 서당, 1989)
  • 최성춘, 『연변 인민 항일 투쟁사』(민족 출판사, 1999)
  • 최홍빈, 「홍기하 전투」(『결전-중국 조선족 발자취 총서』, 민족 출판사, 1991)
  • 황용국 주편, 『조선족 혁명 투쟁사』(요령성 민족 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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