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두도류하 회의

한자 第1次 頭道柳河 會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조약과 회담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전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중국 공산당 남만 성 위원회와 동북 항일 연군제1로군 간부들이 개최한 연석 회의
관련인물/단체 양정우
체결|제정 시기/일시 1939년 10월 1일~5일
체결 장소 중국 길림성 화전현
정의

1939년 10월 1일부터 5일까지 길림성 화전현 두도류하에서 중국 공산당 남만성 위원회와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간부들이 개최한 연석 회의.

체결 경위

1939년에 들어 일제가 만주 지역에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은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총부는 노령 근거지를 버리고 북으로 이동하였다.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부대의 대부분은 근거지의 후원을 상실한 채 백두산 지구의 밀림 지대에 들어가야 했다. 부대의 규모는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었다.

이에 양정우의 주도로 제1차 두도류하 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위증민·전광·방진성·한인화·황해붕 등이 참석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유격구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제1로군의 실력을 보존하고 적의 괴멸적 타격을 피하기 위해, 소부대를 편성하여 ‘분산 유격’하는 방침을 취해야 한다는 노선을 결정하였다.

조약/회담 내용

제1차 두도류하 회의의 방침이 결정되자 제1로군은 활동 구역과 전투 임무를 새롭게 조절하였다. 우선 제1방면군은 조아범의 지휘 하에 몽강·휘남·금천·임강현 등의 변계 지역에서 유격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제2방면군은 김일성의 지휘 하에 장백·무송·화전·연변 일대에서, 제3방면군은 2개의 부대로 나뉘어 활동하기로 하였다. 제3방면군의 1개 부대는 위증민이 지휘하는 제1로군 총부의 직속 부대로서 돈화·화전·길림 지구에서 활동하기로 하였다. 다른 한 부대는 진한장이 인솔하여 영안·동녕·오상·교하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북만의 다른 부대들과의 연계를 확보하기로 하였다. 또한 총사령부 경위려와 제1방면군 일부는 양정우의 지휘 하에 각 부대의 작전에 협조하기로 하였다.

결과

제1차 두도류하 회의 이후 제1로군은 일제의 토벌 작전의 예봉을 피하면서 야습·매복·우회 유격 등의 효과적인 전술로써 항일 무장 투쟁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39년 하반기에 제1로군은 일제와 총 276차례나 교전하였다. 그 중 제2방면군과 제3방면군이 연변 일대와 북만 경계 지대에서 적과 교전한 것이 96차례에 달하였다. 제1방면군과 제1로군 사령부 소속 부대가 교전한 것이 72차례에 이르렀다. 교전 부대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108차례였다.

의의와 평가

제1차 두도류하 회의는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이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직면하여 최후까지 항일 무장 투쟁의 역량을 보존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참고문헌
  • 김동화 등 편저, 『연변당사 사건과 인물』(연변인민출판사, 1988)
  • 조선족 약사 편찬조 지음, 『조선족 약사』(백산 서당, 1989)
  • 최성춘 주필, 『연변 인민 항일 투쟁사』(민족 출판사, 북경, 1999)
  • 황용국 주편, 『조선족 혁명 투쟁사』(요령성 민족 출판사, 1988)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