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자치 촉진회

한자 延邊 自治 促進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한인 자치조직
설립자 전성호|김정일
설립 시기/일시 1930년 10월
최초 설립지 중국 길림성 연길현·화룡현·훈춘현·왕청현
현 소재지 중국 길림성 연길시·화룡시·훈춘시·왕청현
정의

1930년대 중국 정부의 허가 하에 설립된 합법적인 한인 자치 조직.

설립 목적

1930년 5·30 폭동 이후 한인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간도 폭동이 격화되자. 중국 당국의 탄압으로 한인들의 피해가 속출하였다.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합법적인 한인 자치 조직인 연변 자치 촉진회가 결성되었다.

연변 자치 촉진회는 금융부와 간민회(墾民會) 같은 기구를 두어 한인 농민들을 보호하는 한편,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인 민회 등의 친일 기구를 일소(一掃)하고자 했다.

변천

연변 자치 촉진회는 1930년 9월 연길시 주비처장(籌備處長) 장서한(張書翰)이 연길·화룡·왕청·훈춘 등의 한인 대표 20명을 소집하여 시정 방침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조직되었다. 향로회(鄕老會)라고도 불렸다.

회의에서 한인 대표들은 중국의 법률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민족적 자치단체의 조직을 제의하였다. 회의에는 연길현에서 김정일(金廷一)·김경희(金京禧)·장원준(張元俊), 왕청현에서 현천극(玄天極)·최진동(崔振東), 훈춘현에서 채취오(蔡聚伍) 등 귀화한 유력 한인이 참석했다. 이로써 탄생한 연변 자치 촉진회는 동년 10월 3일 중국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연변 자치 촉진회는 활동 방침으로 첫째, 한인의 사상 선도 기관 겸 자치 지식 양성 기관으로 인정하고, 민족주의자 및 종교 단체의 유력자로서 조직할 것. 둘째, 지부는 당분간 공산주의 운동의 타도에 전력을 다하고 점차 자치 촉진을 계획할 것. 셋째, 공산주의 타도를 위해 유세대(遊說隊)를 편성하고, 각지에 유세하여 공산주의의 불합리함과 한인의 민족적 대동 단결의 필요성을 고조시킬 것 등을 결정하였다.

중국 당국에서는 전성경무처 번역관(全省警務處飜譯官)이었던 오인화(吳仁華)를 통해 연변 자치 촉진회의 간부인 전성호(全盛鎬)·김정일(金廷一)과 교섭하고 공산주의를 타도하기 위하여 연변 자치 촉진회가 적극 활동하는 것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리고 예수교 장로파의 민족주의자들과도 회의를 갖고 공산주의 운동에 대응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하였다.

연변 자치 촉진회는 1931년 3월 한족 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와도 연락을 취하고 구역 조직에 착수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변 자치 촉진회를 중심으로 한 한인 사회의 합법적 자치 운동도 한인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제의 정치적 갈등 관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의의와 평가

연변 자치 촉진회는 간도 봉기 이후 한인 사회가 급속하게 좌경화하는 과정에서 한인 사회에 대한 중국 당국과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자 중국 당국과의 협조 하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일부 민족 진영의 노력을 반영하고 있던 단체였다.

참고문헌
  • 「自治促進會 吉林省에서 許可」(『동아일보』 1930. 10.11)
  •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 주의 운동사』 4(청계연구소, 1988)
  • 梶村秀樹姜德相 編, 『現代史資料』 29(みすず書房,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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