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韓 新民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항일 무장 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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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 김규면 등 |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3·1 운동 전후 경 |
1919년 3·1 운동 전후 중국길림성 훈춘현에서 기독교 감리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항일 무장 독립군단.
대한 신민회의 근거지는 북간도에는 훈춘현과 왕청현에 있었다. 단장 김규면은 한인 사회당의 이동휘와 연결하여 러시아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도 근거지를 두었다. 근거지가 여러 곳에 있어 전체 병력을 총합하기는 어려우나, 약 500명 정도의 단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흥수(李興秀)가 이끌었던 바, 왕청현에 주둔했던 대한 신민회의 병력은 1920년 6월 봉오동 대첩에 참가해 일본군을 섬멸하는 데 크게 활약했다. 이어 1920년 10월에는 의군단·국민회군·대한 독립군 등과 함께 연합 부대를 결성해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청산리 대첩 후 대한 신민회 소속 독립군들은 다른 독립군단 소속원들과 함께 러시아연해주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서 일부는 한인 빨치산에 가담해 활동하였고, 일부는 자유시 참변 후 만주로 돌아와 1922년 8월 대한 독립군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기독교인들의 무장 항일 투쟁 사실을 보여주는 독립군단이다. 조직의 근거지가 북간도와 러시아 등 여러 곳에 있어 공간적으로 폭넓은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