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민단

한자 義民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춘화향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무장 독립 단체
설립자 방우룡|김연군
설립 시기/일시 1920년 전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0년 10월
정의

1920년 전후 길림성 왕청현에서 천주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무장 독립군단.

설립 목적

의민단북간도에 이주한 천주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1919년 왕청현 춘화향 가야하에서 조직한 독립군단이다. 종교를 통해 단원들을 합심시키고, 합일된 마음으로 무장력을 키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다.

변천

의민단의 단장은 방우룡(方雨龍), 부단장은 김연군(金演君)이었으며, 그 밑에 재정부·선전부·외교부·통신부·경위부·교육부 등이 있었고, 약 200명의 독립군 병사와 200정의 총을 보유하였다.

의민단은 국민회군·대한 독립군과 함께 연길현 명월구에 독립군 사관 양성소를 설치하였다. 사관 양성소를 통하여 소속 독립군을 훈련시키고 한인 청년들을 적극 모집하여 새로운 독립군 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0년 8월 일제의 서북간도 독립군 기지 침입 정보를 입수한 의민단북간도의 다른 독립군단들과 함께 백두산록을 향해 이동했다. 부대 이동 중 1920년 10월 일제의 대병력과 마주치자 대한 독립군·의군단·신민단 등과 독립군 연합 부대를 결성해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청산리 대첩 후 의민단은 러시아의 자유시로 이동했다가 자유시 참변 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1921년 8월 결성된 대한 독립군단의 단원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종교를 매개로 독립군들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 무장 항일을 실천한 독립군단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한층 결속시킬 수 있었기에 청산리 대첩과 같은 효과적인 무장 투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참고문헌
  • 신용하, 『한국민족독립운동사연구』 (을유문화사, 1985).
  • 윤선자, 「간도 천주교회의 민족운동」 (『于松 조동걸선생정년기념 한국민족독립운동사연구』, 나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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