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 중학교

한자 永信 中學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민족 교육 기관
개교 시기/일시 1921년 5월 28일
개칭 시기/일시 1938년
1926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5년 4월
정의

1921년 5월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 설립된 민족 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영신 중학교는 1921년 5월 28일 개교하였지만, 초등학교 과정의 영신 학교는 1912년에 이미 민족 교육자인 윤상철(尹相哲)에 의해 설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영신 중학교영신 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의 중등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것이다.

변천

영신 중학교는 개교 당시 4개 반을 설치해 한인 학생들을 교육시켰다. 1923년 6월에는 영신 여자 중학교를 설립하여 남자 중학교와 함께 5년제로 운영하였다. 1924년 북간도 지역에 대흉년이 일어나 운영이 어렵게 되자 교감 윤화수는 일본인 히다카[日高丙子郞]의 힘을 빌어 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다. 히다카는 그 시기 북간도 지역에서 교육 활동을 내세우며 한인들의 항일 운동을 조사하는 조선 총독부의 첩보원이었다. 영신 중학교에 히다카가 관여하게 된 소식이 퍼지자 애국 동포들은 연일 학교에 나타나 항의하였다. 그 같은 항의에 히다카는 잠시 학교 일에 손을 떼었으나, 1925년 4월 다시 학교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학교를 경영하게 된 히다카는 이듬해 광명 중학교로 학교 이름을 고치고 영신 여자 중학교는 폐교시켰다. 그리고 조선 총독부가 편찬한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였다. ‘만주국’ 시기인 1938년 간도성립 제1 국민고등학교로 개명되어 해방이 될 때까지 문을 열었다.

의의와 평가

영신 중학교는 일제의 침략으로 북간도까지 이주하게 된 이주 한인들의 민족 교육 정신이 깃든 학교였다. 하지만 영신 중학교가 히다카의 손에 넘어 간 것은, 한인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간도를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해 민족 학교를 없애고자 한 일제의 농간은 막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현규환, 『한국 유이민사』상, (성문각, 1967).
  • 윤병석,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16(1910년대 국외항일운동Ⅰ-만주·러시아)(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