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正東 學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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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종교/기독교 |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자동둔 후저동 |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중국 길림성 화룡현 자동둔 후저동에 설립된 한인 민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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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교 시기/일시 | 1908년 10월 |
| 폐교 시기/일시 | 1832년 6월 |
| 개칭 시기/일시 | 1913년 3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9년 3월 13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2년 |
1908년 길림성 화룡현 자동둔(子洞屯) 후저동(厚底洞)[현 길림성 용정시 개산둔진]에 설립된 한인 민족 학교.
정동 학교는 이전부터 민족 교육 기관이었던 정동 서숙이 1913년 3월 학교 이름을 고친 학교이다. 1914년에는 여학부가, 1917년에는 중학부가 신설되었다. 일제에게 민족 학교로 주목받아 1920년 경신 참변 당시에는 교사가 일본군에 의하여 소각 당했다. 1922년 한인 유지들의 노력으로 재건되어 민족 교육의 맥을 잇다가 1932년 일제에 의해 다시 소각되어 폐교되었다.
정동 학교의 교과 과목은 한국어·산수·역사·지리·이과·체육·음악 등이었다. 1914년 8월에는 여학부를 따로 설치하고 25명의 여학생을 모집하여 여성 교육을 시작했다. 1915년 4월 제1회 졸업생 15명을 배출하였다. 2년 후인 1917년 중학부를 신설했다. 정동 학교는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 뿐 아니라 애국 사상의 고취에도 역점을 두어 졸업생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존에 대한 의식이 강했다. 따라서 국내에서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 학교의 학생들과 졸업생들 대부분이 용정에서 일어난 3·13 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민족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1920년 10월부터 일어난 경신 참변 당시 일제에 의해 항일 민족 학교로 지목되어 교사가 소각되었다. 1922년 한인 유지들이 학교를 재건하여 민족 교육의 맥을 이어나갔다. 이후 정동 학교는 일제의 갖은 탄압에도 민족 교육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1932년 6월 괴뢰 만주국을 세운 일제가 학교에 불을 질러 더 이상 교육을 못하게 하자 문을 닫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