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琿春 韓民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항일 무장독립군 단체 |
|---|---|
| 설립자 | 이명순 등 |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4월 중순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0년대초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 최초 설립지 | 중국 길림성 훈춘현 |
1919년 4월 길림성 훈춘현(琿春縣)에서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며,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군단이다.
훈춘 한인회는 처음에는 이동휘(李東輝)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초대 회장은 이명순(李明淳)이었다. 훈춘 한인회는 성립 초부터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했으며, 무장 항일 투쟁을 노선으로 하였다. 훈춘 한인회는 러시아에서 구입한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약 200명에 달하는 소속 독립군을 두었다.
훈춘 한인회 소속 독립군들은 1920년대 초 수차에 걸쳐 두만강을 넘어 국내로 진입하여 일제의 군경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훈춘 한인회를 이끈 주요 인물들인 이명순·황병길·윤동철·최경천 등은 그 시기 북간도 한인 사회의 유력 인사들이었다. 따라서 훈춘 한인회는 일제의 주 감시 대상이었다. 일제는 훈춘 한인회를 해산시키도록 중국측에 압박을 가했다. 결국 1920년 8월 표면적인 해산을 해야 했다. 그러나 훈춘 한인회 소속 독립군들은 흩어지지 않고 화룡현 방향으로 이동하여 1920년 10월 독립군 연합 부대를 결성하여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였다.
청산리 대첩 후 훈춘 한인회 소속 독립군들은 러시아연해주로 이동하여 이후 러시아 항일 빨치산군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훈춘 한인회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매체로 구성원간의 결속을 맺어 조국 광복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였다. 기독교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 항일 투쟁까지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는 독립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