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延吉 爆彈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화룡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만주 사변[일명 9·18 사변]’을 도발하여 만주를 점령하고 1932년 3월 1일 괴뢰 만주국을 세웠다. 이후 중국 동북 지방에서는 일제의 침략과 괴뢰 만주국의 수립에 반대하는 ‘반만(反滿) 항일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산하 동만 특별 위원회(東滿特委)의 주도로 연변 각지에서 항일 유격대를 건립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1년 말 중국 공산당 화룡현(和龍縣) 위원회 산하 다라즈구[達拉子區] 위원회 서기 김일환은 구 위원회 확대 회의를 열고 항일 무장 조직 건설 문제와 무장 방안 등에 대해 토의하였다.
이 때 연길 직업 학교에서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던 손원금과 무기를 잘 다루는 박포수에게 무기 제조 작업을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곧 화룡현 금곡촌의 깊은 산속에 무기 제조창을 만들고 여러 가지 무기 제조에 착수하였다. 또 1932년 여름 연길현 적위대는 연길현 석인구(石人溝)에 무기 제조창을 설립하고 ‘병공창(兵工廠)’이라 명명하였다. 같은 해 11월 일·만 군경의 항일 세력 토벌이 격화되자 연길현 유격대는 무기 제조창을 왕우구(王隅溝) 동북 방초령(芳草嶺) 뒤의 깊은 골짜기로 옮겨 무기 제조를 지속하였다.
1932~1933년 경 연변 지역 항일 세력이 사용하여 명성을 떨친 ‘연길 폭탄’은 1호(頭號), 2호, 3호 등 세 종류가 있었다. 1호는 건축물을 파괴할 만한 위력이 있었고, 2호는 교량을 파괴할 만한 위력이 있었다. 3호는 돌격 혹은 기습전에 사용되는 소규모의 수류탄이었다.
일반적으로 불리는 ‘연길 폭탄’은 소형의 3호, 즉 수류탄을 가리켰다. 이 소형의 연길 폭탄은 열악한 조건에서 처음에는 요란한 소리만 나는 ‘소리 폭탄’에 불과했으나, 좀 더 위력을 가하기 위해 화약에 고춧 가루를 넣어 만든 ‘고추 폭탄’으로 발전하였다. 이후 내부에 돌조각을 넣어 만든 ‘돌자갈 폭탄’으로 발전하였고, 결국에는 쇠조각을 넣어 만든 ‘쇠조각 폭탄’까지 제작되었다. 연길 지방의 일·만 군경들은 이 소형 수류탄에 상당한 피해를 입고 ‘연길 폭탄’으로 명명하며 그 위력에 전정긍긍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