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吉林 大檢擧 事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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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길림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7년 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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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27년 1월 27일 |
| 발생|시작 장소 | 길림성 동대문밖 대동공사 |
1927년 1월 27일 일본 경찰이 만주 길림의 대동 공창(大同工廠)의 안창호 연설회에 참가한 재만 한인들을 체포한 사건.
1927년 1월 재만 한인 사회의 단결과 민족 의식 고취를 시키기 위해 안창호는 남만주의 길림으로 갔다. 당시 남만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단체는 정의부와 참의부였다. 안창호는 두 단체의 지도자들에게 길림성의 대동 공사에 이주 한인들을 모이도록 한 뒤에 1월 27일에 대한 청년의 진로라는 제목의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연설회에는 정의부와 참의부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약 500명의 한인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연설회 개최를 사전에 탐지한 일제는 중국 측에 병력을 동원하여 한인들을 해산시킬 것을 종용했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군은 연설회장으로 진입하여 연사인 안창호를 비롯하여 130여 명의 한인들을 강제 연행하였다. 그리고 안창호를 포함한 민족 운동자 42명을 구속하였다. 길림 대검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일제는 중국 측에 이들 42명 전원을 조선 총독부 측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흥사단 등 여러 한인 독립운동 단체들이 중국 당국에 항의와 설득을 거듭했다. 그 결과 구속의 명분을 찾지 못한 중국 당국은 구속 21일 만에 42명 전원을 석방하였다.
길림 대검거 사건은 일제 침략자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은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조국 광복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족 지도자를 열망하는 재만 한인들의 민족 정신도 함께 살펴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