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만 청년 총동맹

한자 南滿 青年 總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길림시 반석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청년 운동 단체
설립자 김강
설립 시기/일시 1924년 11월
정의

1924년 길림성 반석현(盤石縣)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운동 계열의 청년 운동 단체.

개설

남만 청년 총동맹은 1924년 11월에 결성되어 1928년 민족 유일당 결성 운동이 와해되는 즈음까지 존재한 조직으로 사회주의 운동 정파인 ML그룹의 외곽 단체였다. 남만주 지역에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현지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운동 단체였던 참의부·정의부에 영향력을 부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남만 청년 총동맹의 활동에 영향을 받은 일부 청년들은 좌경화한 결과 1929년 4월에 결성된 국민부를 반대하는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설립 목적

남만 청년 총동맹은 창립 대회에서 ‘총체적인 착취와 압박 하에서 여지없이 자유와 생존권을 유린 받은’ 청년들은 ‘철저한 계급적 의식과 견고한 조직적 단결로 청년 운동을 통일’하겠다고 선언하고 아래와 같은 강령을 발표하였다.

1. 본 동맹은 노력 청년의 견고한 조직적 단결로 청년 운동의 통일을 기함.

2. 본 동맹은 철저한 계급적 의식으로 합리적 신 사회를 건설할 역군의 훈련 및 수양을 도모함.

3. 본 동맹은 고려민족의 해방을 위해 결사적 분투를 행함.

4. 본 동맹은 계급 혁명을 위해 헌신적 투쟁을 맹서함.

변천

남만 청년 총동맹은 1924년 11월 유하현(柳河縣)·반석현·화전현(樺甸縣) 등지의 11개 청년 단체 대표가 반석현의 호란집창자(呼蘭集廠子)에 모여 결성하였다. 창립 대회에서는 위원장에 김강(金剛)을 선출하고, 박정현(朴正賢)·박병희(朴秉熙)·신명산(申明山)·손경호(孫京鎬)·이종림(李鍾林)·이석호(李石虎)·이성택(李成澤)·이량(李良)·한진(韓震)·허용(許湧)을 중앙 집행위원으로 선출하였다.

1926년 4월 제2차 대회에서 한진을 중앙 집행위원장에 선출하고 중앙 집행위원을 개선하였다. 산하에는 8개 현의 청년 단체들이 세포 단체로 가담해 있었다. 1928년 5월 반석현 등지에서 열린 ‘전 민족 유일당 조직 촉성 회의’에서 모든 조직을 해체하고 민족 유일당에 개별적으로 가입하자는 ML그룹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였다. 1928년 남만주 지역에 농민 동맹이 조직되자 많은 회원이 여기에 참가하면서 청년 단체로서의 활동력을 점차 상실해 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만 청년 총동맹은 기관지로 『동맹(同盟)』을 발간하였다. 야학을 통해 계몽 활동을 벌이고, 순회 활동을 통해 비회원들에게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조직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의의와 평가

남만 청년 총동맹은 남만주 지역에서 신지식에 목말라하던 청년들의 교양에 힘썼다. 민족주의 운동 단체와 세력 확대 경쟁을 하는 한편에서 통합을 위한 민족 유일당 결성 운동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하지만 남만주 지역 한인 사회에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특정 정파인 ML그룹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 운동사(1920~1945) : 민족주의 운동 및 사회주의운동 계열의 대립과 연대를 중심으로』(아세아 문화사, 1999)
  • 채영국, 『1920년대 후반 만주지역 항일무장 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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