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건 24개돌

한자 石建 二十四個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진 석건7대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주거 유적
현 소재지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향 석건7대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도문시(圖們市) 월청향(月晴鄕) 석건평(石建坪) 7생산대(生産隊)에 있는 발해 시대의 다락집 유적.

개설

석건 24개돌 유적은 발해 시대에 지어진 다락집 유적으로 창고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경위

석건 24개돌 유적의 창건 년대는 불분명 하지만 출토 유물로 보아 발해 때 축조되어 요(遼)·금(金) 시대에도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석건 24개돌 유적은 길림성 도문시 월청향 석건 7생산대에 속해 있다. 이 지역은 마패 24개돌 유적이 있는 향 소재지와 약 6.5㎞의 거리를 두고 있다. 유적은 석건 7대 마을 남쪽 주택가 뒤편 비교적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에서 앞을 보면 500m 전방에 두만강이 흐르는데 그 맞은편에 북한의 동관리(潼關里)가 보인다. 현재 유적지 부근에는 많은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형태

지역 주민 말에 의하면 원래는 넓고 평평한 곳이었으나 집을 지으면서 유적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 24개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많이 훼손되어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확인되는 주춧돌의 숫자는 5개이다. 유적의 주춧돌은 마패 24개돌 유적과 같이 ‘⌂’ 형태로 다듬어졌으며, 직경은 0.47∼0.60m 정도, 높이는 0.80∼0.95m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적의 면적은 대략 동서 20m, 남북이 8m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신빙성이 그리 높지 않다. 유적 주변에서는 회색의 천무늬 암키와 조각이 채집되었다.

현황

석건 24개돌 유적은 중국 내에 있는 9개의 24개돌 유적 가운데 가장 심하게 파괴된 것에 속한다. 유적 현장에는 주춧돌이 하나도 없다. 농민들이 주춧돌을 날라다 담을 쌓거나 돼지우리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현지 답사 결과, 각 주춧돌은 유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살림집 마당 혹은 주변에 산재해 있었다. 한 집에서는 돼지우리 경계벽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어떤 집에서는 길에 세워 두기도 하였고, 어떤 집에서는 하나는 땅에 묻어 두었고, 다른 하나는 쪼개어 마당에 세워둔 경우가 있었다.

의의와 평가

석건 24개돌 유적은 일찍이 파괴되어 유적 현장에는 주춧돌이 하나도 없다. 각 마을 개인집에 서있거나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가까운 곳에 남겨져 있는 마패 24개돌 유적과 같이 흩어져 있던 주춧돌을 모아 유적을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이병건, 『발해 24개돌 유적에 대한 건축적 연구』(건국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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