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渤海 中京城 遺蹟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
| 성격 | 성곽 |
|---|---|
| 길이 | 외성 :북벽 632m, 남벽 628.2m,동벽 734.2m, 서벽 72.7m,내성: 북벽 187m, 남벽 187.9m,동벽 311.1m, 서벽 306.8m |
| 둘레) | 외성 둘레 2,720m 내성 둘레 992.8m |
| 면적 | 0.46㎢ |
| 문물|보호단위등급 | 길림성 중점 문물 보호 단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23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7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4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2003년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2005년 |
| 문물 지정 일시 | 1981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2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3년 |
| 현 소재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서성진 성남촌N : 42°42′35.23′″E : 129°08′56.39″ |
| 원소재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서성진 성남촌N : 42°42′35.23′″E : 129°08′56.39″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화룡시(和龍市) 서성진(西城鎭) 북고성촌(北古城村)에 있는 발해 시대의 도성 유적.
사이토 우[齋藤優]의 컬렉션에는, 1940년 9월 19일에 만주항공회사가 촬영한 1만분의 1 항공 사진이 있어, 서고성의 형태와 주변 지형을 살피는 데 매우 귀중하게 쓰이고 있다.
서고성의 형태는 발해의 최대 수도인 상경과 동경의 유지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고 외성은 장방형인데, 동서의 길이가 630m, 남북의 길이가 730m이고 둘레의 길이가 2,720m이다. 성벽은 흙을 다져 쌓았는데 다짐층의 두께는 0.1m 이다. 성벽 밑변의 너비는 13~17m이고 윗면의 너비는 1.5~4m이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8~2.5m이다. 남쪽 성벽과 북쪽 성벽 중간의 트인 곳이 성의 남북 중추선에 놓여 있는 남문과 북문지로, 그 너비는 약 15m 정도이다.
내성은 외성의 북중부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있고 남북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서 190m, 남북 310m이다. 제1 궁전지 북쪽 기단에서 북으로 36m 거리에 제2 궁전지가 있다. 내성의 남벽은, 문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중앙에서 안으로 향한 부분으로 굴곡져 있다. 후전(後殿)의 정전(正殿) 기단이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되고,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후전의 기단에서는 항(炕)[온돌 구들]의 연돌(煙突)이 2기 확인되었고, 주거 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성의 남벽을 따라, 해란강 상류에서 발원한 수로가 흐르고 있고, 이 수로를 건너 내각(內閣)에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중경 현덕부는 문왕이 도읍한 곳이며, 노주·현주·철주·탕주·영주·흥주 등 6주를 관할하였다. 『신당서』 지리지 권7에 인용된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를 보면, 신주에서 육로로 600리를 가면 현주에 이르는데, 정북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 왕성[상경 용천부]에 이른다고 하였다.
서고성은 중경 현덕부의 왕성이고, 현덕부의 수주인 현주는 서고성을 중심으로 한 지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주는 서고성에서 동으로 130리 떨어진 곳, 철주는 서고성에서 서남으로 60리 되는 곳, 탕주는 서고성에서 서북쪽으로 120리 되는 곳, 영주는 서고성에서 동북쪽으로 150리 되는 곳, 흥주는 서고성에서 서남으로 300리 되는 곳에 각각 위치한다. 중경 현덕부의 관할 범위는 왕청현(汪淸縣), 도문시(圖們市), 연길시(延吉市), 용정시(龍井市), 화룡현(和龍縣), 안도현(安圖縣) 그리고 함경북도 일부 지역에 걸친 광대한 지역이었다. 천보 말년에 발해는 서울을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옮겼다.
중경의 위치에 대해 다수 논의가 이어졌지만, 문헌과 고고 발굴 성과를 통해 현재의 서고성이 바로 중경의 소재 도성임이 밝혀졌다.
중경이 위치한 곳은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여 인구가 밀집한 곳이다. 주변에는 해란강이 지나며, 연결 평원으로 이어지는 포이합통하 등이 어우러져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따뜻하며 관개가 편리하여 농작물과 제철업 등이 발달하였다. 특히 ‘노주의 벼’, ‘현주의 베[천]’, ‘위성(位城)의 철’ 등이 이 지역 특산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중심으로 대외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당·거란·일본·신라 등과의 문물 교류에서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