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미 고분군

한자 得味 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와룡향 득미촌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무덤
양식 석실봉토분
크기(높이 0.5m
길이 2.5m
너비 1.3~1.4m
지름) 5m
면적 300㎡
발굴 조사 시기/일시 만주국 시기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9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4년
소재지 길림성 화룡시 와룡향 향곡촌(득미촌)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서성진(西城鎮) 향곡촌에 있는 발해 무덤.

개설

득미 고분군은 길림성 와룡향 향곡촌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발해 시대의 석실 봉토분이다.

위치

득미 고분군이 위치한 향곡촌[구 득미촌]은 서성진 서성 중학교에서 시내를 지나고, 명암촌에서 서북쪽으로 약 5㎞ 떨어진 장항 고분군과 장항 고성이 위치한 장항촌(獐項村)을 지나고, 다시 서북쪽으로 약 10㎞를 가면 유적이 위치한 향곡촌이 나온다. 마을 북쪽은 높은 산과 이어져 있고, 남쪽은 비교적 넓게 펼쳐진 평지이다. 그 사이를 고동하(古洞河)가 동류하며 그 남쪽에는 시내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4년 간행된 『화룡현 문물지』에 따르면 만주국 시기에 일본인들이 삼림철도를 놓는 과정에서 무덤 3기를 발굴하였다고 한다. 이후 1979년 봄 길림성 고고훈련반(吉林省考古訓練班)이 무덤구역 서쪽의 무덤 1기를 시굴하였고, 198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문물보사대(延邊自治州文物普査隊)가 다시 시굴했던 무덤을 조사하는 한편, 도면을 작성하였다.

형태

남북 10m, 동서 30m 범위에 석실 봉토분 여러 기가 있는데 봉토는 거의 사라지거나 조금 남아 있고, 무덤을 덮었던 덮개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979년 시굴 조사된 무덤의 봉토의 지름은 5m이다. 길이 2.50m, 너비 1.30~1.40m, 높이 0, 50m에 달하는 장방형의 무덤칸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돌로 동·서·북 세 벽을 쌓았고, 남쪽에 문을 만들었다. 무덤 입구는 작은 돌로 막았으며, 천정은 판석 3장으로 덮여 있다.

출토 유물

부장품은 남아 있지 않다.

현황

『화룡현 문물지』 작성 당시 고분군은 파괴되고 파헤쳐진 무덤 이외에도 보존 상태가 대체로 좋은 8기의 무덤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현재 몇 기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의의와 평가

득미 고분군은 무덤의 형식으로 보면 발해의 중소형 돌방무덤과 매우 비슷하고, 인근 지역인 장항촌·명암촌·서성진의 군민교 등지에 발해 유적이 위치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발해 시대의 무덤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주변 유적과의 관련성을 검토해 본다면 득미 고분의 성격과 위상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和龍縣文物志』(1984).
  • 和龍縣地方志編纂委員會, 『和龍縣志』(吉林文史出版社, 1992)
  • 김진광, 『북국 발해 탐험』(박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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