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都利行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
| 성격 | 왕족 |
|---|---|
| 성별 | 남 |
| 활동 시기/일시 | 726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726년 4월 |
| 몰년 시기/일시 | 728년 4월 |
대무예는 당에 활발히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당이 발해의 북쪽에 흑수주(黑水州)를 설치하고 여기에 장사를 파견하는 등 새롭게 전개되는 정세가 대무예의 대당 외교를 자극하였던 것이다. 726년 3월, 대무예는 적자이자 계루군왕(桂婁郡王)이던 대도리행(大都利行)을 보내어 내조하게 하였고, 4월에는 좌무위대장군을 받아 숙위에 들어갔다. 728년 4월 장안(長安)에서 사망하였다.
발해와 당의 관계는 숙위 중이던 대도리행이 객사하는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730년 대무예의 동생 대문예(大門藝)의 당 망명 사건으로 인해 비로소 발해가 당의 등주(登州)를 공격할 정도로 대결 관계가 한계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