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帽兒山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지명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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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곤룡포 입은 사나이| 목동 |
| 모티프유형 | 지명 유래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 관련 지명 | 연길시와 용정시의 경계 |
1990년에 김태갑이 북경 민족 출판사에서 펴낸 『조선족 전설집』에 「모아산」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멀고먼 옛날 모아산은 오늘의 모아산과 그 모양도 전혀 같지 않았고 이름도 달랐다. 그 모양이 멀리서 보면 마치 버섯처럼 생겼다고 버섯산이라고 불렀다. 곁에 다가가 보면 사면은 깍아지른 절벽이요 꼭대기는 가름발로 된 넓적한 청석으로 층층이 덮여있어 마치 양산을 씌운듯했다. 오뉴월 삼복지간에는 돌굴 속에서 쓸어나오는 냉기에 몸서리가 치고 때때로 산 위에서 구들장같은 돌이 떨어지며 산산조각나는 바람에 아무도 감히 산기슭으로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나의 독버섯 같다고 독심산이라고도 불렀다.
독심산은 무시로 세전벌에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풍악 소리 속에 한무리 사람들이 독교를 메고 나오는데 곧추 령언덕까지 내려왔고 독교가 언덕에 이르면 곤룡포를 입은 사나이가 들판을 휘둘러보는데 그러면 영낙없이 광풍이 몰아치고 우박이 쏟아졌다. 그러면 세전벌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삼신제[산신제]를 지냈다. 어느 한해도 농사가 잘 되었다. 초복 전에 벌써 조는 자당도리를 치고 옥수수는 키를 넘었다. 세전벌에 농사를 지어 처음으로 되는 희한한 농사였다.
그런데 곤룡포 입은 사나이가 망쳐놓았다. 이때 마음씨 착한 목동아이가 있었는데 목동아이는 밀강도끼를 둘러메고 독심산으로 올라가 사나이와 대응하였다. 목동은 몇번 쓰러졌다 일어서니 순식간에 백여명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고함소리 비명소리 산천을 뒤흔들었다. 목동은 싸울수록 많아져 천여명으로 되었다. 그러자 곤룡포 입은 사나이는 더는 담당해낼수 없어 굴속으로 도망쳤다. 천지를 진동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독심산이 터져버렸다.
이후 사람들은 독심산에서 목동의 삿갓을 발견하였는데 산이 멀리서 보면 목동의 삿갓과 비슷하다고 하여 모아산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