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로

한자 神仙爐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조리 도구
재질 구리
정의

별도로 조리한 어육류와 채소 등을 색에 맞춰 담고 육수를 부어 끓여먹는 한민족의 독특한 음식이자 이를 담는 그릇의 이름

개설

신선로는 조선시대 ‘입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에서 열구자탕[悅口資湯] 또는 입안을 뜨겁게 하는 음식이라는 의미로 열구자탕[熱口子湯]으로도 불렸던 일종의 전골음식이다. ‘신선로’는 열구자탕을 담아내는 특이한 구조의 조리기구를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차츰 이 음식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의 전골류가 조리하지 않은 재료들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신선로는 갖은 모양을 내 별도로 조리한 재료를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독특하게 변형된 형태이다.

신선로는 수십 가지의 음식 재료를 제각기 조리하여 신선로 용기에 넣고 같이 끓여 먹는데, 신선로에 들어가는 음식 재료들로는 소고기, 소등골, 소천엽, 소간, 닭고기, 해삼, 새우, 전복, 계란, 버섯, 미나리, 홍당무, 파, 참대순, 호두, 은행, 잣 등이 있고 이들과 함께 육수를 붓는다. 신선로는 화통에 불을 붙여 음식을 끓여가며 먹는 것으로 그 모습이 독특하고 화려하여 음식에 대한 구미를 더욱 돋게 한다. 조선 후기 왕실과 양반층에서 유행했던 신선로는 재료가 호화롭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잔치나 손님 접대를 위한 주안상이나 교자상 등 격식을 갖춘 한식 상차림에 올리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세기 이후에는 한정식집을 통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면서 고급 한식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중국 한인들에게도 신선로는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나, 오늘날에는 도시에 있는 한인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연원 및 변천

15세기 말~16세기 초에 정회량이라는 사람이 산속에 들어가 기거하며 특수한 화로를 만들고 거기에 갖가지 음식 재료를 넣어 끓여 먹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신선과 같다고 하여 신선로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는 기록이 『조선요리학』이라는 책에 쓰여있으나 내용의 진위는 불분명하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중국의 훠궈, 일본의 스키야키와 함께 조선에서도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위에 삿갓 모양의 전철(煎鐵)을 올려놓고 쇠고기를 굽고 그 육수에 채소를 데쳐 먹는 전골음식이 유행한 바 있다. 겨울철 여러 사람이 모여 이 음식을 함께 먹는 풍속을 ‘난로회(煖爐會)’라고 하였는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는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무, 오이, 마늘, 파, 계란을 섞어 넣고 장국을 끓인다. 이것을 열구자탕 또는 신선로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신선로의 초기 형태는 중국 및 일본처럼 별도로 조리하지 않는 음식을 바로 끓여 먹는 방식이었다가 점차 한국식 상차림에 맞게 미리 조리한 재료들을 상위에서 데워만 먹을 수 있도록 탈바꿈시킨 결과, 19세기 중반부터는 차츰 격식과 품위가 더해진 오늘날의 형태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임원십육지(1827)』 「섬용지」에는 이 전골용 조리기구가 “일본에서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에 두루 퍼졌는데 오히려 일본 것보다 더 좋다”고 평가한 기록이 있어 신선로가 이미 19세기 중반에는 한국식으로 토착화된 정황을 알려준다.

형태

연변 박물관(延邊博物館)에 소장된 신선로는 1958년에 수집한 1940년대의 유물이다. 동으로 제작된 이것은 솥과 로로 구분되는데, 솥은 대접 모양이고 겉에 물고기와 당초 문양이 새겨져 있다. 솥의 가운데에는 연통이 세워져 있다. 로는 엎어 놓은 사람 형상으로 밑부분은 비어 있고 한 쪽에 숯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마련되어 있다. 신선로의 총 높이는 12.5㎝이며 솥의 직경은 19.2㎝이다.

참고문헌
  • 『연변문화유물략편』(연변인민출판사, 1989)
  • 최민호, 「연변조선족 김치문화의 특징과 변천」(『김치, 한국인의 흥과 한』, 세계김치연구소, 2016)
  • 전통문화포털(https://www.k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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