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龍頭 遊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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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놀이/놀이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속 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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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시기 | 정월 보름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
| 놀이 장소 | 마을 공터 |
중국 길림성 연변지역에서 나무로 만든 구조물 두 개에 사람을 태우고 서로 겨루어 상대 사람들을 끌어 내리거나 구조물을 내려 앉히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한인들의 놀이.
용두 유희는 동체 싸움·차전놀이·목우전·수레싸움·고싸움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놀이는 주로 한국의 남부 지방, 특히 안동(安東)을 중심으로 연행되던 놀이로 한인들에게는 중국 이주와 함께 전승되었다. 주로 정월 대보름에 마을과 마을 간의 대전 형식으로 진행된다.
용두 유희의 유래에 관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의 태조왕건(王建)이 후백제의 왕 견훤(甄萱)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안동 마을 사람들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설과 함께 견훤의 군대를 강으로 밀어 넣어 승리한 것을 본따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견훤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안동 사람 권행(權幸)·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이 수레를 만들어 전투에서 승리하였음을 기리는 놀이라는 이야기도 같이 전해온다.
용두 유희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용두이다. 용두의 몸체는 긴 나무 두 개를 ‘X’ 형태로 묶은 뒤 새끼줄로 감고 그 위에 지휘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올라탈 수 있도록 받침대를 달아 제작한다. 받침대 뒤쪽으로는 용두의 몸체를 이루는 두 나무 사이를 다른 나무로 연결하고 단단히 고정하여 용두가 부서지거나 뒤틀리지 않도록 한다.
용두의 크기가 크고 참여 인원이 많은 만큼 용두 놀이는 마을 주변의 너른 공터에서 진행된다.
같은 인원수로 구성된 양 팀은 용두 위에 올라탄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상대편 용두를 공격한다. 이 때 상대의 용두를 뒤집거나 땅에 닿게 하면 승리하게 된다. 용두에 올라탄 지휘자가 상대 팀 지휘자를 용두에서 끌어 내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놀이에서 이긴 쪽은 상대방의 용두를 분해하여 어깨에 메고 함성을 지른다.
용두 유희는 정월 대보름의 세시 놀이로 마을을 단위로 하여 연행되는 만큼 구성원 간의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용두 유희는 2009년 성급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도 정월 대보름에 마을 대항전의 형태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