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 유형 | 놀이/놀이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민속 놀이 |
|---|---|
| 노는시기 | 정월 대보름|단오|추석|일상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3월 |
중국 길림성 지역 한인 사회에서 긴 널빤지의 양쪽 끝에 올라서서 번갈아 뛰어 오르는 한국 전통 놀이.
널뛰기는 본디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즐기는 여성들의 민속놀이였으나 점차 체육 경기의 한 종목으로 자리잡았다. 널뛰기 경기 방식은 ‘줄 뽑기’와 ‘표현’ 두 가지가 있다.
‘줄 뽑기’는 널빤지 양쪽에 실타래를 놓고 그 끝을 선수들 발목에 맨다. 공중 도약이 높으면 높을수록 풀린 실의 길이가 길어진다. 경기 후 얼마만큼 실이 당겨져 풀렸는가를 측정하여 승부를 판가름한다.
‘표현’은 공중으로 도약할 때 여러 가지 자세를 선보여 그 표현력을 가늠한 후 승부를 내는 경기로 ‘규정 종목’과 ‘자유 종목’으로 나뉜다. 규정 종목은 미리 약속된 몇 가지 동작을 제한된 시간 내에 서로 유연하게 연결하여 표현하는 것이고 자유 종목은 꽃다발이나 부채, 끈, 댕기 등 몇 가지 수구(手具)를 활용하여 다리의 기본동작에 접목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다리 동작에는 곧추뛰기, 한 다리 붙여 뛰기, 중둥꺾기, 공중회전 등의 기술이 있고, 수구를 활용한 동작에는 진동, 회전, 뛰어넘기, 던져 받기 등이 있다.
널뛰기의 연원을 명확하게 짚어 내기는 어렵지만, 조선정조(正祖)[1752~1800] 때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초판희(超板戲)’라는 명칭으로 널뛰기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이미 연행되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널뛰기의 유래에 관하여 구전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옛날 감옥에 갇힌 남편을 둔 두 여인이 자신들의 남편을 보기 위해 감옥 담장 바깥에서 널뛰기를 하였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집 안에 갇혀 있다시피 하는 옛날 여성들이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널을 뛰면서 바깥 구경을 하였다는 것인데, 두 가지 모두 정설로 보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널뛰기가 디딜방아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놀이로 그 연원이 고구려 이전으로 소급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널뛰기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널과 고임목이 필요하다. 널의 규격은 길이가 5∼5.5m이고 너비는 35∼40㎝, 두께는 5∼6㎝ 정도이다. 고임목은 널 중간 부분 밑에 고이는 것을 말하는데, 예전에는 짚단을 많이 활용했고 가마니 안에 흙을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널빤지 중앙에 사람이 올라 타 앉아서 널이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였다. 지금은 보통 나무로 만든 말 안장형(形) 고임목을 사용하는데 그 높이는 보통 25∼30㎝ 정도이다.
널뛰기는 주로 학교 운동장이나 광장과 같이 넓은 장소에서 연행되었다.
널뛰기를 하는 두 사람은 널빤지의 양쪽 끝에 선다. 한쪽에 올라 탄 사람이 몸을 공중으로 도약하였다가 내려오는 순간 다른 한쪽의 사람은 널에 실리는 힘을 이용하여 공중으로 몸을 띄운다. 공중으로 뛰어 올랐던 이가 다시 내려와 널빤지를 밟으면 반대편 사람이 그 힘을 이용하여 다시 공중으로 몸을 도약시킨다. 이러한 방법으로 번갈아 가면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뛰어 오르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널뛰기는 주로 여성들의 놀이로 다른 여성 놀이가 정적임에 비해 매우 활기찬 특징이 있다.
한인의 널뛰기 놀이는 1930년대부터 각종 운동 경기의 종목으로 진행되었다. 1983년에 이르러서는 제1회 길림성(吉林省) 한인 운동회의 정식 경기 종목에 채택되었고 중국 소수 민족 운동회의 모범 경기 종목에 포함되었다. 2006년 3월에는 국가급 무형 문화재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