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容植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소설가 |
|---|---|
| 성별 | 남 |
| 출생 시기/일시 | 1925년 1월 9일 |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1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65년 9월 |
| 활동 시기/일시 | 1979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86년 1월 |
| 몰년 시기/일시 | 1986년 5월 19일 |
| 출생지 | 조선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상청동 |
일제 강점기 흑룡강성으로 강제 이주한 경상북도 영양군 출신의 소설가.
김용식은 1945년 흑룡강성목단강시립 연합 중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부터 북만 일대에서 교육 사업에 종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김용식은 처녀작인 시 「소생향의 아침」을 1946년 목단강시 조선 인민 민주 동맹 기관지 『건설』에 발표한 뒤, 1948년에는 단편 소설 「혁명가의 안해」를 목단강『인민 신보』에 발표하고, 극본 「애국자의 적혈」 등을 써서 연출을 맡기도 했다. 김용식은 1957년 중국 작가 협회 연변 분회로 자리를 옮겨 문학 월간 잡지 『아리랑』 편집을 담당했으나 1958년 우파로 몰리면서 1961년 9월까지 노동 개조를 해야 했다. 김용식은 1961년 연변 군중 예술관에서 『연창 재료』 편집을 담당했으며, 1962년부터 1965년까지는 화룡현 문화관에서 창작 보도 사업에 종사했다. 김용식은 1965년 8월 병을 얻어 화룡현 와룡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투병 생활을 했다. 김용식은 1979년 복직되어 퇴직 때까지 연변 문학 예술 연구소에서 『문학 예술 연구』의 편집과 조선 고전 문학 연구 사업에 종사하였다.
1980년에 『연변 문예』에 연재, 발표한 「규중비사」로 1981년 전국 소수 민족 문학 창작상을 수상하였으며, 1982년에는 동북 3성 조문 우수 도서 1등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