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延吉縣 抗日 遊擊隊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연길현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단체 |
|---|---|
| 설립자 | 중국 공산당 동만 특별 위원회 |
| 설립 시기/일시 | 1932년 10월 |
| 최초 설립지 | 연길시 |
1931년 만주 사변 후, 중국 공산당의 지휘 하에 연길현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단체.
1932년 봄, 중국 공산당 연길현 위원회(中國共産黨延吉縣委員會)는 당, 단 열성자 회의를 열고 동만 특별 위원회(東滿特別委員會) 지시에 따라 항일 유격대를 창건하고 일본군의 무기를 탈취하여 유격대를 무장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탈취한 무기로 연길현 항일 유격대는 1932년 10월 의란구 유격대와 노두구 유격대가 합병된 것이다. 의란구 유격대는 1932년초에 건립되었다. 대장은 박춘(朴春)이었다. 노두구 유격대도 1932년초에 조직되었다. 대장은 박중철(朴仲哲)이었다. 연길현 항일 유격대의 대장은 박동근(朴東根)이었고, 정위(政委)는 박길(朴吉)이었다.
연길현 항일 유격대는 만주를 강점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무장을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1932년 말 삼도만 산림대(三道灣山林隊) 장강호 부대(長江好部隊)에 파견되었던 왕덕태가 20여 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의란구 왕우구 근거지 와서 연길현 유격대에 가담하였다. 1933년 1월, 해란구 유격대가 연길현 항일 유격대에 편입된 후 유격대를 유격대대로 확충하고 박동근이 계속 대대장을 맡고 박길이 여전히 정치위원을 맡았다.
연길현 항일 유격대는 연집강·팔도구·의란구·동불사·삼도만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항일 유격대 전신인 적위대 시절에는 고춧가루 작탄, 연길 작탄 등을 만들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32년 11월부터 삼도만 대동구(三道灣大東區)에서 400여 명이나 되는 일본군 토벌대와 싸워 90여 명을 소멸하였다.
연길현 항일 유격대는 1934년 3월말에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 독립사 제1탄으로 편입되었다.
연길현 항일 유격대는 주로 조선족으로 이루어진 항일 무장 단체로서 만주 사변 후, 간도 지역에서 중국 공산당의 지도 하에 제일 먼저 조직된 무장 단체이며 연길현 항일 군중들을 조직화 하고 항일 무장 투쟁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