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구포대산 사건

한자 明月溝 炮臺山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1년 12월 7일
발생|시작 장소 안도현 명월구
정의

1931년 안도현 명월구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길림성 변방군 제677단 3영 사병들이 군영에 침입한 일본인을 사살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31년 9월 18일 만주 사변이 발발한 후, 연변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 동북군 군인들은 일제와 싸우려는 정서가 매우 강하였다.

경과

1931년 12월 7일, 돈도 철로 건설을 위해 일본 측량대 2명 대원이 중국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함부로 동북군 방위 지역까지 들어 왔다. 일본 측량대원들은 옹성라자[현 명월구]에 있는 중국군 초소 앞까지 와 망원경으로 사방을 살폈다. 이에 중국군은 재차 경고하면서 당장 물러갈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포대 앞까지 와서 측량을 하려고 하자 격노한 중국 군인들이 두 일본인을 사살하였다.

결과

명월구포대산 사건이 발생하자 많은 중국인들은 사병들의 행위를 성원하고 나섰다. 중공 동만특위에서도 성명을 발표하여 사병들의 정의의 행동에 성원을 표시하였다. 일본은 즉각 연길 경비 사령부에 사람을 파견해 항의하자 중국 지방 책임자 길흥은 일본에 사과하는 동시에 매인에게 3천원에 달하는 무혈금을 발급하였다.

의의와 평가

명월구포대산 사건은 중국 장병들의 항일 염원을 반영하였다. 명월구포대산 사건은 왕덕림이 이끄는 3영이 항일 구국군으로 발전하는 계기로 되었다.

참고문헌
  • 东北抗日联军斗争史编写组,『东北抗日联军斗争史』(人民出版社, 1991)
  • 최성춘, 『연변 인민 항일 투쟁사』(민족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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