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자 공안국 분주소 습격전

한자 大坎子 公安局 分駐所 襲擊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2년 1월 15일(음력)
발생|시작 장소 길림성 왕청현 대감자
정의

1932년 왕청현 노농 반일 유격대가 왕청현대감자 공안국 분주소를 습격한 사건.

개설

1932년 정월 보름날, 왕청대감자 공안국 분주소의 경비 태세는 느슨한 상황이었다. 이때 유격대 대장 김철 등 10여 명의 노농 반일 유격대원들이 공안국 분주소를 불의에 습격하여 무장 해제를 하고 무기를 탈취하였다.

역사적 배경

왕청현 노농 반일 유격대는 1932년 2월 초에 10여 명의 대원으로 조직되었다. 대장은 김철이고 정위는 김명군이었다. 이들은 왕청현 노농 반일 유격대의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대감자 공안국 분주소를 습격하는 전투를 계획하였다.

당시 대감자[지금의 왕청현 신흥향 대감자촌]는 왕청과 도문 구간의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이 번창하고 내왕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왕청·소왕청·신흥·삼도구·령정평 등지의 농민들은 대개 대감자에 와서 장을 보았다. 그리고 석현·가야하·백초구·국자가 등지의 장사꾼들도 대감자에 와서 난전을 벌였다. 1923년부터 왕청현 공서에서는 7~8명의 무장 순경들을 대감자에 배치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였다.

경과

1932년 정월 보름날, 대감자 공안국 분주소의 경찰들은 명절을 맞아 경비에 소홀한 상황이었다. 이를 틈타 김철(金哲) 등 10여 명의 노농 반일 유격대원들은 대감자 공안국 분주소를 불의에 습격하였다. 갑자기 들어 닥친 노농 반일 유격대에 경찰들은 우왕좌왕하다가 투항하였다.

결과

노농 반일 유격대원들은 7정 소총과 수 백발의 탄약을 노획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감자 공안국 분주소 습격전은 노농 반일 유격대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계기로 각지 반일 유격대는 일본군과 경찰 그리고 위만군을 상대로 무기를 탈취하여 자신을 무장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 김동화 등 편저, 『연변당사 사건과 인물』(연변인민출판사, 1988)
  • 김동화, 『연변청년운동사』(연변인민출판사, 1988)
  • 황룡국·신일호·최홍빈·황유복·문숙동, 『조선족 혁명투쟁사』(료녕민족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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