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두만강변에서 펼쳐진 부유촌의 단오 행사

한자 豆滿江邊에서 펼쳐진 富裕村의 端午 行事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삼합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2006년 5월
2008년
부유촌의 단오 명절이 새롭게 부흥하기까지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 사이에 맞이하는 단오 명절[음력 5월 5일]은 한국인과 중국 한인뿐 아니라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고려인 사회 등 아시아 지역의 한민족 공동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축제 중의 하나로 발전해 가고 있다. 특히 단오는 각 나라와 지역마다 제철 농산물과 연계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절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와 중요성이 큰 절기로 부각되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 단오제(端午祭)는 이미 오래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었다. 그러나 그동안 끊임없이 전통을 지켜온 강릉 단오제(江陵端午祭)가 유네스코(UNESCO) 세계 무형 문화유산(世界無形文化遺産)으로 등재되면서, 최근 전주(全州)를 비롯하여 지역마다 다시 부활하고 있다.

중국의 단오절(端午節)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2008년부터 국경절로 공휴일이 되면서 단오절 행사가 부활하고 있으며, 때를 맞추어 동북 3성의 한인 사회에서도 단오 명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1989년 고려인 사회가 음력설, 추석 등과 함께 단오 명절을 한민족의 전통 명절로 부활시킨 이래 비록 규모는 소박하지만 지역민과 함께 하는 초여름 명절로 지켜오고 있다.

중국 한인 사회에서 이 단오 절기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으로는 두만강변부유촌(富裕村)을 꼽을 수 있다. 지금의 용정시 삼합진 부유촌은 2001년 체제개혁 전에는 독립적인 부유향(富裕鄕)이었다. 부유·조동(朝東)·하마래(下馬來)·합전(䶎田) 4개 촌으로 구성된 이 향에는 546호 2,282명[1985년 통계 기준]의 한인만 거주하고 있었다. 부유향에서는 예로부터 조상 전래의 전통 명절인 단오날을 지키고, 해마다 변함없는 단오 놀이를 유지해 왔다.

용정시 문화관(龍井市文化館)에서는 1995년부터 부유향의 단오놀이 민속 활동을 문화관 사업의 중점 지도 종목의 하나로 지정하고 단오 절기의 활성화를 중심 사업으로 수행해 나갔다. 당시 필자는 용정시 문화관 관장[용정시 문화 예술 센터 부주임]을 맡고 있었던 관계로 단오 명절 행사 활성 사업의 중심에 있었다. 한편으로 용정시 문화 체육국(龍井市文化體育局)에서는 1998년 5월 30일에 부유향 소재지에서 열린 제4차 부유향 민속 대회(富裕鄕民俗大會)에서 부유향을 ‘조선족 민속 활동향(朝鮮族民俗活動鄕)’으로 명명하고 그에 따른 재정을 지원해 주었다.

부유촌을 중심으로 하는 부유향 단오 놀이의 특점은 조상 전래의 단오 놀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사람들의 취향과 환경, 시대감과 현실에 뒤처지지 않게 여러 가지 토속적인 민속놀이와 어우러져 절기를 즐기고 있다는 데 있다. 이곳의 단오 놀이는 부유향이 삼합진에 귀속된 다음에도 오늘까지 계속 견지되고 있다. 필자는 1995년부터 5차례나 부유향 단오 놀이 행사에 참여한 바 있는데, 이 중에서 1995년 단오 명절 행사가 제일 인상이 남는다. 당시 부유향 부유촌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단오 명절 행사들을 중심으로 그간 새롭게 부흥되어 온 단오 절기 행사의 모습들을 하나씩 차례로 감상해 보자.

두만강 백사장의 단오 놀이터를 사전 답사하며

1995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단오 절기가 시작되기 얼마 전부터 필자는 부유향 정부와 당위 선전위원, 문화소 박철산(朴哲山) 소장과 단오놀이 행사 계획을 미리 치밀하게 짜 놓았다. 필자는 단오 명절 전날인 6월 1일에 직원들을 데리고 부유향으로 갔다. 향장(鄕長)과 당위 선전위원, 문화소장이 하마래의 두만강변 백사장에 단오 놀이터를 잡는 것에 대한 의향을 물어오며 필자에게 현장 답사를 다녀올 것을 제의했다.

하마래 마을을 가로지르는 신작로의 남쪽, 소소리 솟은 버들방천을 꿰뚫고 십 여m를 들어가니 새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한 보드러운 백사장이 나타났다. 두만강의 물결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백사장 여울을 핥고 있었고, 두만강 건너 편에는 북한의 농촌 마을과 일하는 농민들이 지척에 있듯이 보였다. 백사장 북쪽 켠에는 녹색 잔디가 비단처럼 깔려 있고, 그 북쪽에는 하늘로 치솟은 듯한 버드나무들이 실실이 드리운 가지를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상큼한 나무향기와 풀향기에 가슴이 확 트이고 그림 같은 풍경에 온몸이 잦아들었다.

휘늘어진 버들가지에 그네줄을 매고 하늘을 날고, 푸르른 잔디밭에서 윷놀이를 하며, 한편으로 새하얀 백사장에서는 씨름판을 벌리고, 녹음이 우거진 시원한 숲속에서 오찬을 즐기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라며 일행은 그곳을 놀이 예정지로 점찍어 두었다. 필자 일행은 그곳에 한참을 둘러보며 다음 날 있을 행사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우리 한민족은 자고로 자연을 숭상하고 그 속에 살면서 자연과 고락을 같이 하며 자연에서 지혜와 힘을 얻어왔다. 이곳 한인들도 바로 친환경적이고 원초적인 신앙을 지켜가면서 생태 자연의 품속에서 단오놀이를 펼친다. 그 시설이나 규모, 모든 것이 도심에 있는 경기장이나 공원보다는 못하지만 자연에 의거하고 자연을 숭상하는 그들의 향토 신앙은 바로 이곳에서 빛을 뿌리고 있다.

부유촌의 단오 행사-집단 놀이들

단오 명절을 맞이하면서 각 촌에서는 단단히 준비를 한다. 단오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바로 농민들 자신들이 참여하는 한민족 민속 놀이이다. 이른 새벽부터 사방에서 도보로, 혹은 수레나 경운기를 타고 모여든 남녀노소가 벌써 버들방천과 잔디밭에 진을 치고 소란스럽다. 힘든 모내기와 밭일에 바쁜 시간을 보냈던 농민들은 서로 만나 반갑다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향장이 놀이의 시작을 선포하고 마을 좌상 노인이 징을 울리자 마침내 각 촌마다 정성들여 준비한 집단 문예 공연(集團文藝公演)이 시작된다. 집단 문예 공연에는 농경 생활을 반영하는 거름 모으기춤, 실생활을 반영하는 물동이춤, 탈춤과 광대춤, 북춤과 강강수월래, 풍상고초를 담은 흘러간 노래와 건드러진 민요, 독창과 표현창, 아름다운 전통 가요에 맞춘 막춤들이 포함된다. 두만강 백사장에는 환희가 가득하다. 부유 학교 학생들도 제기차기, 고무줄뛰기, 줄뛰기, 꽁기놀이춤을 추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부유(富裕) 주재(駐在) 무장 경찰(武裝警察)들도 백사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10여 명이 한 몸처럼 함께 움직이는 행진식을 했다. 이어 백사장의 모래들을 하늘 공중에 휘날리면서 긴장스럽고 치열한 격투·진압·생포·결박·압송 등, 적을 무찌르는 군사 동작들을 표현하였다. 그들의 힘차고 날랜 하나하나의 동작에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면서 경탄의 함성을 보냈다.

백사장에 퍼지는 즐거운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는 멀리 두만강변에 메아리 치며 울려 퍼졌다. 두만강 건너 한창 담배 모내기를 하던 북한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지나가던 길손들도 걸음을 멈추고는 이쪽을 바라보면서 웃기도 하고 손을 흔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정겨운 장면이 단오 놀이를 통해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부유촌의 단오 행사-민속 체육 경기들

집단 놀이에 이어 각 촌의 선수들이 참가한 민속 체육 경기가 벌어졌다. 먼저 온갖 풀꽃이 향기를 전하는 버들방천의 그네터부터 보기로 하자. 몇 m 높이의 흐드러진 버들가지에 그네줄이 매여져 있었는데, 각 촌의 그네 선수들은 치맛자락을 날리면서 오색 찬연한 무지개를 수놓고 있었다.

“여이쌰, 힘내라!”. “우리 선수 잘 뛴다. 한번 더, 두번 더….”

응원 소리, 웃음소리, 북소리, 꽹과리 소리에 그네터가 떠나갈 듯하다. 중년 선수들의 그네뛰기가 끝났다. 이에 질세라 일흔을 넘긴 호호백발 할머니들도 왕년의 청춘을 되살리면서 백학처럼 나래치고, 처녀들도, 중학생들과 소학생들도 다투어 그네뛰기를 한다. 그들도 장래에 그네타기 전통을 이어갈 귀한 예비 전통 계승자(傳統繼承者)들이 아니겠는가?

한편 백사장에서는 씨름판이 벌어졌다. 각 촌에서 온 장수들이 듬직한 가슴을 벌리고 나와 서서 위풍을 뽐내더니 샅바를 마주잡고 꿇어앉는다. 이어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면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야, 안걸이를 해라!", " 안치기를 해라!", "좋다. 들어 메쳐라!", " 야, 우리 선수 이겼다. 둥굴소는 우리 꺼다!"

씨름판이 끝날 때마다 동네 젊은이들은 이긴 선수를 업거나 팔을 끼고 엉덩이춤을 춰댄다. 부러움에 겨웠는지 부유 주재 무장 경찰들도 씨름에 끼어들었다. 힘과 의지의 겨룸에 있어서는 그들도 만만치 않았다. 씨름장의 환호소리, 북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한다.

이외에도 버들방천 잔디밭에서는 윷놀이가 한창이다. 각 촌에서 뽑힌 일가 3세대로 구성된 윷놀이 선수들이 서로 엇갈려 앉아 돌림 순서로 윷을 공중에 던져 윷판 안에 떨어지도록 한다. 선수들 옆에서 전문 윷모를 쓰는 사람들이 응원소리와 윷가락에 따라 윷모를 쓴다.

“어이쌰, 모야, 아이구 똘이로구나!” , “자, 컬을 쳐라! 와, 요놈을 잡았다. 한번 더 쳐라!”

응원 소리와 웃음소리에 윷판이 들썽인다. 온 동네 사람들이 자기네 선수들을 둘러싸고 「흥타령」을 불러가면서 어화둥둥 춤판을 벌린다.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른 채 오락의 흥에 빠져 있다. 이것이 바로 부유촌 한인들의 단오 절기 민속놀이의 모습이다. 이 얼마나 흥겨운 광경인가?

한복 많이 입고 오기 시합

그밖에도 단오 행사에서 펼쳐지는 놀이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부유향 단오 놀이 행사 중에는 흥미로우면서 전통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는 놀이인 '복장 시합'이 있다. 한복을 더 많이 입고 온 마을이 이기는 것으로 결과를 짓는 ‘한복 많이 입고 오기 놀이’가 그 것이다.

개혁개방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옷을 아껴 입고 기워 입고, 그리고 소박하게 입는 것을 시대 흐름으로 여겼다. 그런데 살림이 나아지고 넉넉해진 오늘날에는 한복을 곱게 입고, 옷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비기는 것을 시대의 흐름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향 지도부에서는 단오놀이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각 노인 협회와 부녀회, 공청단(共靑團), 민병련(民兵連) 등의 조직에 복장 시합을 한다는 통지를 보내고, 노인회와 부녀회에서 직접 책임지고 검사 독촉을 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식들이 부모님들께 한복을 해드리고, 또 부모네가 자식들에게 한복을 갖춰주도록 함으로써 옛날 전통 한복을 다시 입는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했던 것이다.

필자가 지도하던 그 날도 단오놀이 행사장은 울긋불긋 한복을 떨쳐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푸르른 자연과 어울린 한 폭의 화려한 민속화를 방불케 했다. 향장이 총책임을 진 복장 시합 평의 소조(服裝試合評議小組) 성원들이 행사에 참가한 각 촌 참가자들을 돌아다니면서 행사에 참가한 인원수와 한복을 입은 사람의 숫자, 그리고 색다른 옷들을 입은 비례수를 상세히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마을별로 등수를 매겼다.

민속 음식 만들어 오기 시합

부유향단오 행사 중 앞서 언급한 ‘한복 많이 입고 오기 시합’만큼이나 즐거움뿐만 아니라 전통적 의미를 더해주는 놀이가 있다. 바로 ‘민속 음식 만들어 오기 시합’이다. 즉, 어느 촌에서 만들어온 점심 음식이 더 민속적이고 더 다양하고 더 맛이 좋은가를 겨루어 보는 민속 음식 시합을 말한다. 이 시합을 위해서 향 정부에서는 사전에 각 촌에 충분한 준비를 하도록 통지를 한다.

필자는 단오 행사 전날 향 지도부 구성원들과 단오 행사 계획을 수립한 다음 각 촌마다 돌아다니며 준비 정황을 알아보았다. 합전촌에 가보니 노인 협회 노인들이 벌써부터 쑥떡 만들기에 신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새벽에 뜯어온 쑥잎을 더운 물에 살짝 데친 다음 뜨거운 물로 쌀가루를 반죽하면서 함께 넣어 솥에 쪄낸다. 이어 쪄낸 떡을 절구에 놓고 떡메로 친 다음 온돌에 모여앉아 기름을 바르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쑥떡을 만들었다. ‘네귀 번쩍 골미떡’, ‘꽃살로 찍어낸 동그란 함박꽃떡’ 등등....구수한 쌀맛과 짙은 쑥향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부유촌의 노인 협회 노인들은 단체로 모여서 시루떡을 쪄내고, 졸배떡도 만들고, 찰떡도 치고 있었다. 하마래촌에 이르니 할머니들이 한 창 손을 마추어 가면서 감주를 빚고 있었다. 오지독에 담긴 감주에서 나는 향은 너무도 유혹적이였다. 맘씨 고운 할머니께서 감주를 한 바가지 떠서 필자에게 주었다. 어찌나 시원하고 달콤하고 향이 좋은지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말았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전신에 맥이 빠지더니 그만 취기가 돌아 방에 털썩 드러눕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단오놀이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보니 점심 식사가 좀 늦게 시작되었다. 향의 음식 시합 평의 소조 구성원들이 단체 식사를 하는 각 촌별로 돌면서 음식 종류와 모양, 수량들을 기록하고, 또 맛을 직접 보면서 진지하게 점수를 매겼다. 가지각색의 음식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단오철에 맞게 만든 쑥떡과 졸배떡, 그리고 시원 달콤한 감주가 참가자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후에도 계속해서 각 촌과 향 직속 단위의 문예 종목과 자유 오락이 지속되었다. 저녁 무렵이 되여서야 참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오절 총화모임이 있었다. 향 정부에서 관계자들이 나와서 심사 결과를 참가자들에게 통보하고, 상응한 상금과 기념품들을 전달해 주었다. 상을 받는 사람들마다 기쁨과 만족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부유촌의 단오 행사를 마치며

필자가 함께 하던 날, 부유향의 단오절은 소박하고 향토적인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중국 정부는 단오절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켜 국가 차원의 명절로 승화시켜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중국 정부는 무형 문화유산 보호를 중시한다는 목적 하에 지난 2006년 5월 20일 단오절을 국가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단오절은 2008년부터 국가 법정 공휴일에 포함되었다.

지난 2011년도의 경우를 보면, 국무원 판공청의 지시에 따라 중국 전역에서 6월 4일[토요일]부터 6일[월요일, 단오절]까지 3일 동안을 휴무 기간으로 정하고 대대적으로 단오절을 기념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단오놀이 행사가 더욱더 정부의 관심을 받고 있고, 아울러 일반인들의 참여 의식과 열정이 더 높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근래에는 시대에 걸맞게, 그리고 현대인들의 많은 참여를 유발하고 전국적인 단위의 명절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단오절의 규모나 형식이 점점 더 현대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한 예로 사평시에서 펼쳐졌던 단오절 맞이 연변 노래 자랑을 들 수 있다.

지난 2011년 5월 29일에 연변인민방송국, 사평시 문화 신문 출판 및 체육국, 사평시 민족사무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사평시 조선족 예술관의 협조와 사평시 중한 부녀 아동 병원 등의 후원으로 ‘단오절 맞이 제50회 연변 노래 자랑 특집-사평시편’이 사평시에서 펼쳐지기도 했었던 것이다. 약 한달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펼쳐진 노래 자랑에서는 14명의 가수들이 「어머님께 드리는 노래」·「장백송」·「타향의 봄」·「동그라미」·「오래오래 앉으세요」 등의 가요를 열창하여 사평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의 삶의 현장과 희로애락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도 강릉 단오제를 중심으로 단오 절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매해 이전과는 다른 한 차원 승화된 형태의 기념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연변 한인 사회에서도 단오절과 그 기간 동안에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전통 및 현대적인 형태의 단오놀이를 통하여 민족 정체성과 자부심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또한 이 기간을 통해 서로 간의 화목과 화합의 정을 북돋우고 있으며, 조상 전래의 민속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승해 나가고 있다. 그렇게 볼 때, 비록 부유향의 단오 행사는 한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그 맥을 이어나가야 할 큰 당위성과 필연성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민속사」(『중국 조선 민족 문화사 대계』 7권, 민족 출판사, 2000)
  • 임영상, 「용정과 용정 문화, 용정 문화 콘텐츠」(『한민족 공동체』, 17, 2008)
  • 임영상,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전통 명절과 문화 콘텐츠」(『재외 한인 연구』20, 재외 한인 학회, 2009)
  • 인터뷰(박철산, 부유향 문화 소장, 남, 199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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