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중국 조선족의 새로운 명절, 노인절이 시작되다

한자 中國 朝鮮族의 새로운 名節, 老人節이 始作되다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동성용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1년 8월 15일
1984년 8월 4일
노인절의 발상지, 용정시 동성용진 동성 학교

2011년 8월 14일 원[전] 용정 문화관이광평(李光平) 관장과 함께 중국 조선족의 새로운 명절, ‘노인절’이 탄생한 역사적인 현장, 용정시 동성용진동성 학교를 찾았다. 1982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민족의 해방일인 8월 15일을 ‘노인절’로 삼고 뜨겁게 축하했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동성 학교에 도착하였다. 동성 학교는 학생 수 격감으로 중학교가 없어지고 소학교로 통합된 상태였다. 경축 행사가 열렸던 중학교 운동장의 주석단[스탠드]은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넓은 운동장은 옥수수와 콩밭으로 변해 있었다.

허다한 역사적 현장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연변의 한인[조선족] 사회가 한민족의 미풍양속을 살려 중국 한인[조선족]의 새로운 명절로 승화시킨 ‘노인절’의 발상지는 역사의 현장으로 기록되고 한인[조선족]을 넘어 세계 한민족의 방문을 맞이하는 명소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1982년 8월 15일 ‘노인절’ 행사를 준비한 김시룡 및 주역들의 사진과 공적, 당시의 행사를 보도한 기사들과 그 이후 여러 차례 가진 기념 행사 사진 등을 전시할 작은 공간이 동성 학교 강의실에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용정시, 동성용진 정부의 문화 관계자들은 민족의 소중한 문화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82년 8월 15일 처음 시작된 노인절 행사

1982년 8월 15일 연길현[현 용정시] 동성용향동성 중학교 운동장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동성공사 노인 협회 및 ‘노인절’을 경축하기 위해서였는데, 행사에는 남자 60세 이상, 여자 55세 이상 되는 동성인민공사(東盛人民公社) 1,800여 명 노인들과 5,000여 명 관중들이 참석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지도자 전인영·김승옥·김동기 등과 연길현 지도자들은 ‘노인절’ 경축 활동에 참석하여 노인들과 함께 명절을 축하했다. 그리고 토지 개혁 시절 연변에서 사업한 적이 있는 국가 문화부 민족 문화 예술사 사장 관학동도 연길에 도착한 후 동성공사에서 ‘노인절’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회에 참석하였다.

경축회에서 대표 연설자로 나선 주 당위 부서기 김승옥은 “사회적으로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을 잘 모시어 만년을 즐겁게 보내도록 하는 것은 우리 중화민족의 우량한 전통이며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내용이다.”라고 지적한 뒤, ‘노인절’ 활동을 통하여 일생을 노동으로 보내온 노인들이 만년을 더욱 행복하게 보내기를 축원하였다.

경축 대회에서 공사 노인 협회 구성원들이 노인 협회 규약을 선포했다. 이날 토지 개혁 때부터 30여 년간 혁명과 사업에서 큰 공적을 남긴 김시룡·이옥금·황순옥·방충렬·김창환 등 17명의 노동당원과, 노동간부, 열사 유가족 모범, 훌륭한 시어머니, 노인을 잘 모시는 며느리, 아들, 사위, ‘5호 가정’ 기준병 등 23명의 사원들이 표창을 받았다. 동성인민공사 전체에서 가장 원로인 영성대대[영성촌]의 98세 이명숙 할머니에게 옷 한 벌을 드리고 상장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이날 경축 대회에 남녀 노인들로 운동원을 조직하여 붉은기 꽂기, 사람 찾기, 물동이 이고 달리기, 축구 등 여러 가지 다채로운 체육 활동이 진행되었고, 각 대대별로 운동장에 모여 노래하고 마음껏 춤을 추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88세의 동성 13대의 송보금 할머니는 “언넝 죽어서 흙이 되었을 우리들이 하도 세월이 좋기에 또 생각 밖에 명절까지 맞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라며 66세 아들 유동수, 64세 며느리 임영숙을 앞세우고 장고를 힘 있게 울렸다.

각 현, 시 해당 부문에서 온 책임자들도 동성인민공사 ‘노인절’ 활동을 관람하고 난 뒤, ‘노인절’ 활동이 지지와 칭찬을 받고 있는 매우 보급할 만한 활동이라는 데 동의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노인절, 어떻게 만들어졌나

19세기 중반 이후 살길을 찾아 두만강압록강을 넘어 중국 땅에 이주하기 시작한 중국 한인들은 조상들이 이룩한 전통적인 미덕을 보존하면서 중국의 여러 민족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일구어 왔다. 특별히 중국의 근대 역사와 더불어 항일 전쟁·해방 전쟁·한국 전쟁 등에 적극 참가해 많은 피를 흘린 것 또한 한인[조선족]이었다.

이에 1950년대 조선족 집거구에는 그들의 공적을 기리는 열사비들이 마을마다 세워져 숲을 이루었으며, 열사 가족과 제대 군인들을 우대하고 관심을 쏟는 사회적인 기풍이 수립되었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당시 자식을 잃은 열사 부모님들을 위로하고, 한평생 이 땅을 가꾸어 온 노인들에게 만년의 여유로움을 마련하고자 농촌 마을들을 단위로 노인 민중 단체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그중 하나인 ‘노인 독보조’는 노인들은 한자리에 모아 놓고 오락 활동 등을 통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이 주위의 생활 질서를 유지하고 마을의 집단 행사를 끌어나가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 정부와의 교제, 후대 교양 및 촌민들의 화목을 도모하며, ‘마을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1980년대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책에 따라 물질문명과 함께 정신문명 건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중국 한인[조선족]의 민족성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인 미덕은 경제 생활 수준의 향상과 함께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전통적인 미덕을 토대로 공경과 효성의 마음을 담은 ‘노인절’이라는 중국 한인[조선족]의 새로운 민속 명절이 창제된 것이다.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서기인 조남기는 연길현[현재 용정시] 동성용향[현재 동성용진]에 내려가 사회 조사를 하던 중 상술한 상황을 이해하고 ‘노인 독보조’를 ‘노인 협회’로 바꾸어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1981년 8월 15일 연길현 동성용향에서는 동북 해방 기념일을 계기로 중국에서의 첫 ‘노인 협회’ 성립되었다.

이와 함께 촌·기업·정부가 협력하여 회갑 연령에 달하였으나, 생활고로 회갑상을 받지 못한 노인들에게 촌민들의 정성을 담아 회갑 합동 축수연을 마련했다. 이에 고무된 참석자들은 조선족의 전통적인 미덕을 고양하고 이를 자손만대에 전승해 나가기 위한 ‘노인절’ 제정을 구상하게 되었다.

동성용향 인민 정부는 동북 해방 기념일이자 또한 농한기이며, 다른 명절들과 중복이 되지 않고 동북 지구에서 우기가 지나고 가을에 접어드는 때로 노인들이 거동하기에 적합하다는 등의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양력 8월 15일을 절기 날짜로 잡고, 매년 이날을 동성용향의 ‘노인절’로 지내기로 규정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노인절의 제정과 연행 방식

한인[조선족] 농민들의 소박한 정성으로 시작된 연길현 동성용향의 ‘노인절’ 행사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기타 조선족 집거구 및 전 중국에 걸쳐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각 지역에 노인 협회가 연달아 설립되었으며, 노인들의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사회적으로 노인을 존중하고 우대하는 조치들이 출범하는 등 새로운 사회 문화 환경과 도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토대로 1984년 8월 4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와 정부에서는 이덕수 주장의 주체 하에 당위 상무위원회의를 열어 정부 차원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노인 협회를 설립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매년 8월 15일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노인절’로 비준, 중국 조선족의 자랑인 새로운 민속 명절 ‘노인절’이 정부 차원에서 정식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노인절’은 단순한 경축 행사에서 벗어나 민족의 전통적인 미덕을 계승하고 발양하며, 새로운 시대적인 생활 문화를 창조해 나아가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먼저 사회적인 연행 방식이다. 정부는 ‘노인절’을 계기로 경축 대회를 소집하고 사회적인 공익 활동에 공헌이 많은 노인을 표창하였다. 또한 이와 함께 노인 운동회·노인 문예 경연·경로원 방문·노인 견학단·노인 사업 경험 교류회 등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조직하여 사회적으로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을 우대하는 문화적인 기풍을 선도하였다. 직장에서는 상설 기구인 ‘노인 활동실’을 꾸리고 전직 인원을 배치하여 ‘노인절’마다 정년퇴직한 노인들을 초대하여 기념품 또는 위로금을 드리며 존경과 성의를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노인들의 경험담 등을 들으며 선후배의 관계를 돈독히 다져나갔다.

민간에서의 ‘노인절’ 연행 방식은 다른 명절들에 비해 독특한 특징과 방식을 가진다. ‘노인절’은 오직 노인들을 위한 명절이다. ‘노인절’이 돌아오면 집집마다 가정을 단위로 명절 음식을 마련하고 단란하게 모여 앉아 노인의 건강과 장수를 축복하는 것은 물론이며, 위로금을 드리거나 새옷을 해드린다. 형편이 허락되는 가정에서는 노인절을 계기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근래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넘어 가문의 노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정을 나누기도 한다. 또한 일부 가정에서는 사돈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호 간의 친목을 다져가며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예도 있다.

이와 같이 ‘노인절’에 대한 사회적인 관념 및 풍속이 성숙됨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은사나 혹은 자신의 성장에 도움을 준 선배님들을 찾아 축복하고 그들의 은공에 사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또한 일찍 부모를 여읜 이들은 친척 노인들을 찾아 자신의 부모에게 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도의 마음을 달래기도 하며, 불효를 후회하며 속죄의 마음으로 부모님의 산소에 찾아가는 경우도 흔히 보게 된다.

이밖에 ‘노인절’에 여러 노인 협회가 주최가 되어 노인들의 적성에 맞는 문화 오락 활동을 조직한다. 이때 노인들은 자발적으로 화려한 민족 복장을 차려입고 공원이나 광장에 모여 북과 장고를 울리면서 놀이판을 벌여 명절의 기분을 만끽하며 즐긴다. 이로써 ‘노인절’이면 도심의 거리들은 화려한 민족 복장으로 꽃물결을 이루고 공원이나 광장들은 관객들과 어울리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어 명절의 분위기가 가득 넘친다.

노인절, 연변을 넘어 동북, 그리고 글로벌 조선족 사회로

2011년 8월 17일 요령성 심양에 도착해서 보니 심양의 한인[조선족] 사회는 8월 15일이 노인절이 아니었다. 노인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한인[조선족] 사회만의 노인절이었던 것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풍습이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해도 다소 아쉬운 마음이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한인[조선족] 사회가 노인절을 명절로 삼고 경축하면서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나, 날짜는 같지 않다. 일례로 심양에서는 9월 9일 중양절을 노인절로 지키고 있다. 요령성 심양이나 흑룡강성의 조선족 사회에서 반드시 연변의 노인절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코리안 드림’과 함께 200만 한인[조선족] 인구의 1/4 이상인 50만이 한국에서 살고, 북경을 비롯해 천진·청도·상해·광주 등 연해 지역 대도시에 40만이 살고 있으며, 일본·미국·유럽 등 해외에 20만 이상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한인[조선족] 사회에서는 지역적 거리에 관계 없이 민족 특유의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의 가리봉동 중국 동포 타운이든 북경의 왕징이든, 뉴욕의 플러싱이든 한인[조선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고 나아가 주변의 한민족 공동체를 연결시킬 수 있는 명절 문화라면 연변조선족자치주 집거 지역 출신이든 그 외 산재 지역 출신이든 가릴 것 없이 좋은 전통은 같이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노인절’이 북경과 청도 등 중국의 대도시에서도, 한국에서도 미국의 뉴욕에서도 공유할 수 있는 중국 한인[조선족]의 새로운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 백민성·김재권 엮음,「룡정의 제일」9(『일송정』 제2기, 2001)
  • 한룡길,「조선 민족의 전통 미덕을 토대로 한 연변조선족자치주 ˂로인절˃」(『동북아시아 한민족 문화의 공동 연구 방향과 방법: 민속 문화, 여가 문화, 생활 문화를 중심으로』, 2010)
  • 연변일보사, 『기사로 읽는 새 중국 60년 조선족 변천사-연변편(하)』(민족 출판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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