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중국 100대 중점 대학으로 부상하는 연변대학

한자 中國 100大 重點 大學으로 浮上하는 延邊 大學
분야 문화·교육/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현대/현대
교육의 고향에 자리한 연변대학

연변대학은 민족적 특색을 지닌 종합 대학으로 1949년 한인[조선족] 유명 인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뒤 연변대학은 60여 년간의 고군분투를 거쳐 유구한 전통을 지닌 중점 대학으로 부상하였다.

연변대학 캠퍼스는 '교육의 고향'이라 불리는 중국길림성 연길시에 위치해 있다. 연길시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이며 중국 내 한인[조선족]의 집단 거주 구역이다. 연길시는 장백산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해란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곳으로 한인[조선족]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변대학은 연길시 서북쪽 와룡산 기슭(일제 시기 동간도관동군 사령부와 항일 투사를 고문하던 감옥 옛터)에 자리 잡았다. 276.5㏊ 부지의 연변대학 캠퍼스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려 나무와 숲으로 이루어진 청정한 공간이 마치 생태공원을 방불케 한다. 교육 시설과 학생들의 거주 공간도 기존에 비해 크게 바뀌어 현재는 학생들의 학습·생활·과외 체육 등 여러 활동을 하기에 편안하고 온화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조선족 교육사의 기틀을 마련하다

오늘날 연변은 동북아 금삼각주[혼춘 경제개발지를 이르는 말]의 찬란한 보석으로 부상하였으며 그 거대한 발전과 더불어 연변의 조선족 교육 사업도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섰다. 설립 당시 국무원 고등교육부에 예속되었던 연변대학은 1957년 봄에 길림성 소속이 되었고 1996년 봄에는 원 연변대학·연변 의학원·연변 농학원·연변 사범 고등 전문 학교·길림성 예술 학원 연변 분원 등 다섯 개 대학이 정식으로 통합되어 새로운 연변대학으로 거듭났다. 또한 그해 10월 중외 합작 운영 학교인 연변 과학기술 대학이 연변대학에 편입되면서 연변대학 학교 발전 역사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해방 전, 연변의 교육 기초는 상당히 빈약했다. 1948년 중공 연변 지방 위원회 부서기인 임춘추(林春秋)가 연변 민족 사업 좌담회에서 처음으로 연변에 민족 대학을 세우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러 조선족 고등학교에서 졸업생이 적지 않게 배출되었지만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마땅한 상급 대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인[조선족] 인구가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하던 연변 지역은 특히 향후의 민족 자치를 실시를 위해 많은 민족 인재가 필요했지만 열악한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1949년 4월 연변대학이 설립되었고 중공 연변 지방 위원회 서기 주덕해(朱德海)가 제1대 교장을, 임민호(林民鎬)가 부교장을 맡았다. 연변대학은 초기부터 민족 종합 대학으로서 문과·이과·공과·의과·농과 등의 학과를 망라한 문학부·이공학부·의학부·농학부를 설치하였고 초기에는 교직원이 153명, 학생이 427명이었다. 연변대학의 설립은 한인[조선족]이 한국어로 수업 받을 수 있는 교육 체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주었으며 조선족 교육사의 새로운 기원을 열어놓았다.

유명인의 연변대학 시찰 및 방문

연변대학은 중국 공산당이 소수 민족 지역에 세운 최초의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창립한 이래로 국내외 사회의 관심과 배려를 받았다. 특히 중국 교육부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에서는 항상 연변대학의 개혁을 중시하고 이를 특별히 지지함으로써 연변대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끔 했다. 1962년에는 당시 중국 국무총리였던 주은래(周恩來)가 연변대학을 방문하였고 1964년에는 전국 인대 상무위원회주덕(朱德) 위원장과 동필무(董必武) 부주석이 연변대학을 찾아 연변대학 명칭을 친필로 써주었다. 그리고 호요방(胡耀邦)·강택민(江澤民) 등 국가의 지도자들과 전국 정협의 부주석 조남기(趙南起) 등도 차례로 연변대학을 시찰하고 연변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외 성룡(成龍)을 비롯한 세계적인 톱스타들도 연변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문화 대혁명과 연변대학의 위기

1966년부터 시작된 10년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 전역에 극심한 재앙을 초래했다. 문화 교육 사업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연변대학도 이때에 민족적 특성이 여지없이 짓밟혔다. 연변대학은 민족적 특성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해외에서 중국 공산당의 소수 민족 정책의 상징인 동시에 민족 단결의 선진적인 전형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대혁명 당시의 ‘4인방(四人幇)’은 제 마음대로 민족 이론을 왜곡하며 민족 노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고, 문화 대혁명의 폐해가 심해짐에 따라 민족 대학 교육 사업은 크게 퇴보하였다. 민족 교육 사업자도 심한 박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민족 대학으로서 한인[조선족] 고급 인재 양성을 위주로 하는 연변대학의 기본 이념 또한 말살되었다. 이후 문화 대혁명 시기가 끝나고 점차 지식과 인재를 존중하는 사회 풍조가 형성됨에 따라 연변대학은 서서히 본래의 사명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힘차게 전진하는 연변대학

2011년 현재 연변대학에는 20개의 학원(대학)이 있는데, 철학·경제학·법학·교육학·문학·역사학·이학·공학·농학·의학·관리학 등 학과 분류에 따른 70개의 학부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 국제 교육과 학술 면에서도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어 국내외에서 영향력이 있는, 민족 특색이 강한 지방 종합 대학으로 거듭나고 있다.

연변대학은 현재 13개의 국가 및 성급 중점 학과를 두고있으며, 7개의 국가 특색 전업, 3개의 성급 특색 전업을 포함하여 2개의 박사후 연구 센터가 있다. 또한 박사 학위 수여가 가능한 22개의 전공이 있고 대부분의 학과는 석사 학위 수여가 가능하다.

연변대학에는 박사생 지도 교수가 56명, 석사생 지도 교수가 378명 있으며 전일제 학생 수는 2만여 명에 달한다. 그중 학부생이 1만 6,000여 명, 석·박사 연구생이 3,000여 명, 그 외 18개 국가에서 온 유학생이 700여 명에 이른다.

연변대학은 교육부와 함께 중점 실험실을 건설하는 등 혁신적인 학과군 설치를 추진했고, 중국 국내에 설치된 비슷한 유형의 대학 가운데 일류 수준을 가진 대학으로, 국외에서 일정한 영향력이 있고 민족 특색을 지닌 지방의 종합 대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연변대학은 대내외 교류와 합작을 통해서도 교육의 국제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중국 국내의 북경대학·인민대학·복단대학·하얼빈 공업대학 등 8개 중점 대학과 학교 간 교류 협정을 맺었고, 국외에서는 미국·일본·한국·러시아·북한 등 21개 나라와 지역의 130여 개 대학교 및 연구소들과 합작 교류 관계를 체결하였다. 특히 연변대학은 미국의 캔자스 대학교·한국의 서울대학교·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등과도 자매 결연을 맺었다. 그중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교 간의 자매 결연을 포함한 교류는 물론 민족 문화와 역사에 관한 학술 포럼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국내외 장학 단체 및 교육 재단과 손을 잡고 대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연변대학만의 독특한 학과들

연변대학은 국가 ‘211 프로젝트[211工程]’ 중점 건설 대학으로 확정되었다. 211 프로젝트는 중국에서 ‘과학으로 교육을 진흥시키자’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21세기에 100개 대학을 중점적으로 건설하고 중점 학과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연변대학이 100개 중점 대학의 범위에 포함된 것이다. 연변대학은 진리·성실·융합의 교훈(校訓)을 새로운 이념으로 삼고 ‘번영 각성 의식을 갖추고 교수 질을 근본으로 삼으며 특색을 뚜렷이 하여 학술로 학교를 꾸리자’는 학교 운영 이념을 수립하였다. 특히 ‘다원 문화 교육을 강화하고 다문화 자질을 갖춘 민족 인재를 양성한다’는 학교 운영 특색을 충분히 드러냄으로써 ‘211 공정’의 3대 과업인 중점 학과의 건설, 공공 서비스 체계의 건설, 교원 대오의 건설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외에도 중국국가 교육부와 길림성 인민 정부에서 공동으로 지원하여 추진하고 있는 '국가 서부 대개발 중점 기지 건설 학교’에 선정되어 민족 특색을 갖춘 높은 수준의 대학을 목표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연변대학에서는 ‘조선족 역사와 문화 연구’·‘동북아 연구 및 도문강 유역 개발’·‘장백산 생물 자원 보호와 개발’ 등 3대 학과군을 설립하여 좁은 범위의 교육을 벗어나 학제간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학과 사이의 융합을 추진하고 국제 문화와 인류 사회학 등 새로운 학과의 발전을 가져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조선족 역사와 문화 연구 학과’는 연변대학의 전통적인 특색 학과이다. 211프로젝트가 강조된 ‘10.5’ 기간에 신설하였는데, 연변대학은 이러한 학과의 신설로 조선족 역사·조선족 문화·조선족 교육·조선족 예술·조선족 체육 연구 방면 및 민족학·민족 이론과 정책 등과 관련해 다른 대학과 구별되는 특색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연변대학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특색 학과는 ‘장백산 생물 자원 보호와 개발 학과’이다. 연변대학은 장백산구의 인구-자원-경제-환경 등의 효율적인 발전을 위해 이들의 공생 관계에 입각하여 장백산[백두산] 생물 자원의 합리적인 개발 이용 및 가지속(可持續)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학교의 인재·과학연구·설비·구역 우세를 이용하여 다학과(多學科) 종류로 구성된 ‘장백산 자연 자원 보호 및 개발 연구 학과군’을 중점 학과로 설립하였다.

이외 ‘동북아 연구 및 도문강 유역 개발 학과’도 중점 학과로 부상하였다. 연변대학은 50여 년 동안 발전을 거듭하였고, 무엇보다 211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대학으로 선정됨에 따라 한국·중국·북한·일본 등의 언어 문학 비교 연구, 한국(북한)·중국·일본 3국 관계사 연구 및 각국의 경제 연구 등 동북아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도문강 유역 개발 연구 등의 영역도 맡고 있다.

연변대학은 언어와 지역에 있어 특장이 있고 특히 한국·북한·일본 3국의 언어와 문자에 정통한 관련 전문 연구 인력이 있다. 아세아 아프리카 언어 문학(조선 언어 문학)은 국가 중점 학과로 편성되었고 ‘중조한일 문화 비교 연구 센터’는 교육부의 성(省) 직속 고등학교 인문 사회 과학 중점 연구 기지로 비준되었다.

내일의 연변대학, 조선족 전통 문화 보존에 앞장서다

연변대학은 설립 이래 많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였다. 특히 한인[조선족] 인재 배양을 중시하여 중국 내 한인[조선족]의 전통 문화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교 이래 60여 년 간 나라를 위해 10만 명의 고급 전문 인재를 양성하여 민족 문화 교육, 지역 경제 사회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졸업생의 대부분은 한인[조선족] 인재로서 민족 문화와 역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명실상부 중국 한인[조선족]의 ‘최고 학부’로서 한인[조선족]의 긍지와 자랑임에 틀림없다.

연변대학은 이중 언어를 구사하고, 이중 문화에 자연스레 노출될 수 있는 환경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학생들의 관심과 집중을 받고 있다. 현재 동북 지역의 한인[조선족] 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민족 특색과 장점을 살린 연변대학에 진학하고 있으며, 여러 다른 지역, 다른 민족의 학생들도 문화적 특색을 잘 살린 복합형 인재 양성을 위주로 하는 연변대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연변대학을 찾는 세계 여러 나라의 유학생의 수도 점점 늘고 있어 국내외에서 연변대학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연변대학은 새로운 발전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국내외 일류의 명문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민족적 특색을 온전히 보존하여 민족 문화를 끝까지 지키고 빛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연변대학 캠퍼스에서 오늘 이 순간에도 수많은 청춘들은 꿈을 향해 힘찬 날개짓을 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꾼다. 연변대학의 졸업생들은 중국과 해외의 방방곡곡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 사회의 일원으로 재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반세기를 넘어 장장 60여 년의 시간 동안 연변대학이 이룩한 것은 역사와 전통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꿈을 꾸고 이곳에서 날개를 달고 나아가 자랑스러운 연변대학인으로 거듭났던가. 오늘도 연변대학은 이들이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가꾸어 갈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변대학으로 오라!

60여 년의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변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수많은 이들이 피땀을 흘렸다. 오늘날 연변대학이 중국 조선족 교육의 최고학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세계적인 교육의 요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조선족 역사의 어제와 오늘을 대변하는 현장으로써 연변대학의 내일은 더욱 빛날 것이다.

연변대학김병민 총장은 오늘도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민족 정책 최적의 체현지를 보려면 연변대학에 오시라.

중국 다종 언어 교육의 완벽한 정착지를 보려면 연변대학에 오시라.

중국 29개 성시를 한눈에 보려면 연변대학에 오시라.

중국 조선민족의 완전한 모습을 보려면 연변대학에 오시라.”

참고문헌
  • 정판룡, 『고향 떠나 50년』(연변대학출판사, 2000)
  • 김석주·남설봉, 「최근 중국의 대학교 개혁과 연변대학의 개혁」(『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11권 제5호, 2005)
  • 「인재양성의 전당-연변대학」(『요녕신문』, 2007.4.28)
  • 박금룡·양고봉, 「연변대학 김병민교장을 만나본다」(『길림신문』, 2009.6.27)
  • 연변대학 홈페이지(www.ybu.edu.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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