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연변의 징표, 연변 가무단

한자 延邊의 徵標, 延邊 歌舞團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조선족을 대표한다, 연변 가무단

중국의 한인[조선족] 집거 구역,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특별한 예술 단체가 하나 있다. 한인[조선족]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의 나라들에서까지 그 이름이 익히 알려져 있는 ‘연변 가무단’이 그것이다.

연변 가무단은 한인[조선족]의 상징이자 대표하는 곳이다. 연변의 한인은 150여 년 동안 한민족이라는 끈끈한 민족 정체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은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예술 문화를 계승해 오고 있는데, 이러한 전통을 대변하는 단체가 연변 가무단이다.

예술은 시간을 타고, 연변 가무단의 변천 과정

연변의 한인 예술은 한인들이 풍부한 문화유산을 오랜 동안 중국 문화의 영향 속에서 지켜온 것이다.

1952년 9월 3일, 중국 정부가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설치함에 따라 한인[조선족]들은 정치·문화·경제 등 각 분야에서 자주적인 권리를 인정받고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연변은 중국 내 한인[조선족]들의 문화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각지에 흩어졌던 한인[조선족] 예술인들이 연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문화 단체를 조직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예술 공연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예술 교육도 같이 발전하였다. 소수 민족의 전통적인 민족 예술에 관심이 높았던 중국 정부는 연변 한인[조선족] 문화유산의 수집·정리를 적극 독려에 힘입은 바 컸다.

연변 가무단은 이런 배경 아래 창설되어 전문 예술 공연 단체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946년 탄생한 연변 가무단의 전신은 중국화북의 태항산 일대에 항일 근거지를 두었던 조선 의용군의 선전대였다.

선전대는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서 적극적으로 혁명 선전 활동을 전개하고 혁명 문화를 전파하였다. 선전대는 연변조선족자치구로 되면서 가무단으로 바뀌었고, 1956년 4월 9일 연변 가무단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연변 가무단은 중국 내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이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술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 선전 단체에서 민족 예술 단체로, 연변 가무단의 발전

1956년 4월 창립 초기 연변 가무단의 창작 작품은 예술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형식과 내용면도 단순했다. 작품 내용은 대체로 중국 해방의 감격, 경제 건설, 전선 지원에 나서게 된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듯 연변 가무단은 사회적 정세와 혁명적인 임무 등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야만 했기 때문에 예술적인 수준은 그다지 높지 못했다. 그마저도 1966년 5월부터 시작되어 10년간에 걸쳐 지속된 문화 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은 수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 문화 대혁명이 끝난 뒤 연변 가무단은 중국 중앙 정부의 ‘사회주의적 현대화 건설’이라는 정책을 무용 예술로 승화시키며 새로운 부흥기를 맞았다. 1980년대 후반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기류를 타고 세계 현대 무용이 수용되면서 한인[조선족] 등 소수 민족의 문화 예술도 급속도의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연변 가무단도 전례 없던 문화 현상이 나타났다. 연변 가무단의 활동 영역과 공간이 더욱 넓어졌으며 대외적으로는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북 3성 등 중국 내에서만 공연을 해왔던 연변 가무단은 점차 해외 무용제에 참가하면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연변 조선족의 민족정신을 노래하다, 성과와 업적

연변 가무단은 1946년 3월에 창단된 중국 내 유일한, 한인 문화 예술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연 단체이다. 창립 당시부터 한인 문화 예술의 계승, 발전을 목표로 하였던 만큼 연변 가무단의 작품들은 민족적·지방적 특색이 강했다.

연변 가무단은 1950년부터 약 30여 차례의 초청을 받고 북경에서 공연을 했으며 2011년까지 국가급 상을 100여 차례 수상하였다. 이로 인해 연변은 ‘가무의 고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연변 가무단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춘향전」과 가극 「아리랑」이 국가에서 수여하는 최고상인 문화부 제1기 문화 대상을 수상하였고, 「장백의 정」은 문화부 제8기 문화 대상과 문화 신극 종목상을 수상했다. 특히 대형 민족 가무 「들끓는 장백산」은 제2기 중국 소수 민족 문예 경연 창작·공연·무대 미술 부문에서 모두 금상을 수상했다.

1999년부터 연변 가무단은 공연 경영부를 신설하고 국내외의 공연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때부터 연변 가무단은 중국 남방 지역에서 순회 공연을 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 전역으로 공연 대상지를 넓혀 나갔다.

2006년 5월, 중국북경에서 거행된 제3차 전국 소수 민족 문예 콩쿠르에 길림성을 대표하여 참가한 연변 가무단은 대형 음악 무용 「천년 아리랑」으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천년 아리랑」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한인[조선족]이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 지역의 풍토와 인정 세태 및 민속 등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연변 가무단연변의 최고 가무단으로 성장했다.

밖으로 나가는 연변 가무단과 사람들

연변 가무단은 1997년 홍콩의 중국 귀속 기념 공연에 초청을 받았다. 그 후 14년이 흐른 2011년 홍콩 측의 초청으로 재차 공연을 함으로써 연변 문화 예술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2009년에는 중국 인민 공화국 창립 60돌 기념 음악 공연에 참가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2010년 상해 엑스포에서는 「상모춤」·「부채춤」 등 연변조선족자치주 무형 문화재에 속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세계에 한인[조선족]뿐만 아니라 한인[조선족]의 전통 예술과 풍속을 널리 알렸다.

해외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1992년 한국·중국 수교가 이뤄지면서 연변 가무단의 한국 공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1994년 한국KBS 방송국의 초청으로 대형 무극 「춘향전」을 한국에서 선보였다. 이는 한국에 연변 가무단의 위상을 알리는 시발점이자 가무단이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변 가무단은 한인[조선족] 예술 인재를 배출하는 요람이기도 하다. 중국 국가 1급 배우를 비롯하여 유명한 성악가와 많은 음악가들이 연변 가무단 출신들이다. 대형 무극 「춘향전」과 「백두산 환상곡」의 총감독이자 안무가인 최옥주는 『인민 일보』로부터 ‘조선족이 낳은 문화재’, ‘조선족 무용 예술의 황후’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승숙은 30여 년 동안 70편의 무용 작품을 창작한 공로로 중국 국가 최고 안무상인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중국 국가 1급 배우이자 연변 가무단 부단장, 연변 무용가 협회 주석으로 활동하고 있는 함순녀는 무용계 인사로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1기 4차 회의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들은 연변 가무단을 통해 감춰졌던 재능을 마음껏 드러냈고 꿈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오늘도 그들이 흘리는 노력의 땀방울 덕분에 연변 가무단은 한인[조선족]의 자랑스러운 얼굴이 되어 기량을 맘껏 뽐내고 있다.

조선적인 혹은 중국적인, 조선족 예술을 세계에 알린다

중국 내의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하나인 한인[조선족]은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 내의 많은 곳에서, 한인[조선족]과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도 한인[조선족]에 대한 인지도는 낮다. 고국인 한국의 맥을 이어오면서도 중국에 거주해온 한인들은 중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 자신만의 독특한 전통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완전히 한국적이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중국적이지도 아닌, 고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함이 한인[조선족] 사회에는 있다. 그 중심에 한인[조선족]의 자랑스러운 전통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문화 예술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연변 가무단이 서있다.

창립 초기부터 한인의 민간 예술의 토양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연변 가무단은 한인의 전통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을 그 취지로 삼았다. 때문에 초기 중국으로 이주했던 한인들의 역사와 한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으며, 중국 국적이면서 한인[조선족]이라는 이중적인 신분과 문화를 안고 있는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은 중국 내에서 한인[조선족]만의 문화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연변 가무단은 한인의 전통 문화를 알리는 데 있어서 창작 수법과 표현 기교, 예술적 특색에 대해 창의적으로 접근하여 짙은 민족적 특색을 살리고 동시에 뚜렷한 개성과 시대성을 살렸다. 연변 가무단의 발전 과정은 실제 중국 내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의 발전과도 일맥상통한다.

연변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온 어느 아주머니는 연변 가무단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연변 가무단의 순회 공연을 보면서 자랐고, 그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고 한다. 명절 특집으로 중국 메인 방송에 연변 가무단의 공연이라도 나오면 가족들은 TV 앞에서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인[조선족]들에게 연변 가무단은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존재였다.

연변 가무단은 공연을 하는 곳마다 뜨거운 열정의 무대를 선보여 관중을 압도하였다. 독특한 예술 품격과 전통적인 아름다움으로 연변 가무단은 중국 내 한인[조선족] 문화 예술을 알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연변 가무단의 내일은 더욱 찬란할 것이다

한인이 연변 지역에 정착한지 이미 150여 년이 흘렀다. 고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 하나만을 굳게 지키고자 했던 한인은 전통 문화의 보존을 위해 그 노력을 거듭해왔다.

조선족은 55개 소수 민족 중 하나로 그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연변 가무단을 통해 한인[조선족]만의 고유한 전통 문화를 바야흐로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연변 가무단연변 한인 문화 예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문화 단체이며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해 내는 예술의 전당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연변 가무단연변의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며,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인을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참고문헌
  • 李艳芝|楚山,「朝鲜族人民的骄傲——延边歌舞团」(『吉林艺术学院学报』, 1990)
  • 「长白山下盛开的金达莱——延边歌舞团」( 『中外文化交流』, 1998)
  • 程万泉|杨成军,「让民族文化魅力永存 记吉林省延边朝鲜族歌舞团」(新华网, 2002)
  • 刘畅,「唱响和谐曲 舞动民族情-延边歌舞团将中国朝鲜族歌舞推向全国」(『城市晚报』, 2009)
  • 정승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문화 정체성과 한중 문화 교류에 관한 연구」(한양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0)
  • 『연변일보』(200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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