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나진·선봉을 거쳐 동해로 나가는 출구, 권하 통상구

한자 羅津·先鋒을 거쳐 東海로 나가는 出口, 圈河 通商口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경신진  
시대 현대/현대
중국과 북한의 경제 교류의 창구, 혼춘 권하 통상구(圈河通商區) 가는 길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경신진(京新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조금 지쳐 보이는 듯 일행들은 허탈한 웃음만 짓고 있다. 오전에는 계획했던 권하 통상구를 보지 못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공교롭게도 정부 관계자의 기관 방문으로 인해 교통이 제한되어 더 이상 진입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길가의 허름한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식당의 외관 모습과는 달리 식탁에 올라온 것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신토불이 채소에 직접 만든 두부, 반숙 계란, 두만강에서 잡았다는, 먹기 좋은 크기의 치어 튀김요리 등등. 이날 점심의 압권은 무엇보다 두만강에서 잡아 올린 숭어찜 요리였다. 과연 듣던 대로 중국은 먹거리의 천국이다. 두만강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종 또한 혼춘시와 주변의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찌는 듯한 열기에 지친 심신을 숭어찜으로 잠시 달랜 후, 오전에 돌아 나왔던 권하 통상구로 다시 향한다.

혼춘 제2 고급 중학 교장을 맡았던 김정남 선생의 안내로 권하 통상구 앞마당에 일행을 실은 차량이 멈춘다. 해거름이 되어 가는데도 넓은 통상구 주차장에는 여전히 열기가 가득하다. 덩치가 무척 큰 정문 경비 책임자가 일행의 출입을 가로막고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빠르게 설명을 해 준다. 해외 답사 경험이 한 두 번인가! 표정을 보아하니 내부 방문과 탐방은 안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오전과 오후 두 번 다 헛걸음을 한 셈이다. 정문 건너편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권하구안(中華人民共和國圈河口岸)’이라는 붉은 글씨가 붙어있는 권하 통상구의 관문 건물이 웅장하게 마주하고 서 있다.

두만강변에 자리 한 통상구들의 유래

통상구는 나라의 대문으로서 교류의 통로이다. 연변에 있는 통상구는 혼춘 통상구와 연길 공항 통상구를 제외하고는 8개 통상구가 모두 두만강변에 설치되어 있고, 국경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통상구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12월 27일, 청나라 총세무사(總稅務司, Inspector General of Customs)는 헬렌트를 관장 대리로 임명하여 17명의 수행원과 함께 마차를 타고 혼춘에 가서 세관[혼춘 통관], 즉 길림성 제1관을 세웠다. 이어 두만강변에 크고 작은 나루터 통상구를 설치하면서 100년에 걸친 통상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과거에 통상구는 관문(關門)·분소(分站)·감시소·검사소라고도 불렸다. 기록에 의하면 1930년 이전까지 두만강에 설치한 통상구는 40여 곳이나 되었다. 중국 측 두만강 상류에는 홍기하(紅旗河)·노과(蘆果)·삼합(三合)·불여우골·신전·하전동·학전동·하남호·유동·대동구·개산둔·종성 선구가 있었고, 도문시 경내에는 백룡평·북흥가·대우동·학포·석건평(石建坪)·간평(間坪)·마패(馬牌)·하전자(下甸子)·양수천자(凉水泉子)·공동산·서강구가 있었으며, 두만강 하류에는 밀강(密江)·세완자·사토자·하구·대두천(大肚川)·양초구·경신·이도포자·회룡봉·구사평(九沙坪) 등의 통상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들 통상구들 중에서 도문 통상구(圖們通商區)의 경우는 동북 지역에서 제2의 통상구로서의 위상을 누려왔었다. 잠시 거슬러 올라가면, 도문은 1933년, 1935년에 경도선[장춘-도문]과 목도선[목단강-도문]이 잇달아 부설되고, 두만강 철도와 도로 대교가 준공되어 직접 북한 철도에 이어지면서 중-북, 중-일 간 교통요지로 떠오르면서 통상구 무역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었다. 그로 인해 도문은 점차 도시의 규모를 갖추어 나가며 동북과 북한을 연계하는 중간역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39년 도문 통상구의 무역액이 2억 4천엔(¥)을 돌파하여 대련 항구 다음으로 동북 제2의 통상구로 부상하기도 했다. 도문과 북한남양 간에 통하는 열차는 매일 26회에 달했는데, 그중 여객 열차가 16회로 이용자 수는 월 평균 10만 명에 달했다. 또 국경 도로 다리 이용자 수는 많은 경우 하루 2만 명에 달했다. 1945년 8월, 도문이 해방되자 통상구의 관리권은 일제로부터 중국 정부에 넘어왔다.

하지만 1952년 중국 중앙 정무원의 지시로 대부분의 통상구는 폐쇄되었고, 두만강에는 도문 철도 통상구·도문·개산둔·삼합 도로 통상구와 남평 통상 나루터만 남아 있게 되었다. 이후 1980년대에 대외 개방을 실시하면서 해외 교류의 수요에 따라 사토자, 고성리(古城里), 권하 통상구가 복구된 것이다.

권하 통상구의 어제와 오늘

권하 통상구는 국가 1류 통상구로서 혼춘시 경신진 권하촌(圈河村)에 자리잡고 있다. 권하 통상구는 북한원정리 통상구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북한의 나선 자유 경제 무역구와 직접 왕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권하 통상구는 역사적으로 접경 지역에 위치한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통상구로서 그 위상을 유지해 왔다. 화물량 부족 등의 원인으로 1982년 1월 1일부터 잠시 폐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중국 건립 이후 줄곧 중국과 북한 간의 교역 및 친척 방문 교류 등, 국가 1류 통상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권하 통상구가 다시 그 기능을 회복한 것은 1995년부터이다. 두만강 하류 지역의 국제 합작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1995년에 성 정부의 비준을 거쳐 권하 통상구가 공무 통로로 다시 개통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에 권하 통상구를 기점으로 북한의 나진항을 경유하여 한국부산에 이르는 육해 연합 운행이 개통되고, 아울러 혼춘-나진 2일 관광 상품이 개발되어 마침내 권하 통상구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보다 확대된 대외 개방 정책을 표방하며 길림성과 연변 자치 정부는 권하 통상구의 활용 가치를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한 유무형의 조치들을 강화해 나갔다. 우선 2000년 말까지 2억 4천위안(元)을 투자하여 혼춘시에서 권하 통상구에 이르는 전체 길이 39.98㎞의 포장 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2001년에는 연간 화물 통과 능력이 60만 톤에 달하고, 여객 수송 능력이 연인원 60만 명에 달하는 통상구 여객 화물 검사 청사 및 부속 시설을 잇달아 건설했다. 집계에 따르면 2011년 1월에서 6월 사이 권하 통상구의 하루 평균 출입 인원은 500여 명에 달했다. 이는 권하 통상구 내 관계자들이 제공하는 양질의 서비스와 통상구의 높아진 위상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권하 통상구가 나날이 발전해 가고, 사회 경제적 가치가 증대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권하 통상구를 동북아 지역의 물류의 허브이자 국가 간 상생 발전의 창구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투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북아 경제의 ‘황금통로’, 권하 통상구

권하 통상구가 위치하고 있는 혼춘시는 지정학상 길림성 동남쪽 두만강 하류로 중국과 북한, 러시아 3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 지역의 전략적 요충 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권하 통상구 역시 3국[중국, 러시아, 북한]과 가장 근접해 있는 최전방 통상구로서, 오늘날 국가급 통상구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다.

혼춘시에서는 현재 러시아, 북한과의 경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관문이자 창구로서 여러 개의 통상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는 혼춘 도로 통상구[혼춘 통상구], 혼춘 철도 통상구, 혼춘 권하 통상구, 혼춘 사타자 통상구 등 4개의 국가급 통상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 한국, 일본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육로 및 두만강 해상 통로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 하나인 권하 통상구는 두만강 하류 끝자락에 위치하는 마지막 관문으로서 현재 그 역할 가치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2010년 상반기 길림성 혼춘시에 있는 각 통상구의 수출입 화물량은 8만 6,185톤에 달하고, 또 왕래자 수는 14만 3,475명에 달해 2009년 동기 대비 23.4%가 증가했다. 올 상반기 혼춘 통상구의 수출입 화물량은 4,449톤으로 동기 대비 23.4%가 증가했다. 그중 권하 통상구는 국경 다리 보수 개조로 인해 일정한 영향을 받았지만 여전히 수출입 화물량이 2만 5,317톤을 달했고, 사타자 통상구도 수출입 화물량이 1만 6,370톤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69.7%로 큰 폭 증가했다.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권하 통상구의 무역량은 타 통상구들에 비해 크게 앞서고 있다. 이는 특히 북한과의 무역 규모가 나날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상황은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혼춘시권하 통상구는 함경북도 은덕군(咸鏡北道 恩德郡)과 연결되어 있는 통상 관문이다. 권하 통상구가 한 국가와의 무역 교류의 관문으로서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 통상구의 위상과 가치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권하 통상구의 역할과 기능의 증대로 중국 정부 또한 2010년 5월에 두 지역을 잇는 두만강 대교[권하교] 보수 공사를 했다. 중국 정부가 이 관문을 통해 두만강 유역을 동북아 물류 거점으로 부상시키고자 그 기반을 공고히 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권하교와 북한 내 도로 보수 공사에 들어감으로써 동해 출해권(出海權)을 확보하게 되었고, 동북 3성의 자원을 나진항을 거쳐 상해(上海)를 중심으로 한 장강(長江) 삼각주 지역으로 운송하려는 계획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권하 통상구는 이제 중국 국내를 넘어 명실공히 다국 운송의 ‘황금통로’로 부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 혼춘 제2고급중학교 전 교장 김정남 인터뷰(2011.8.12-13일 채록)
  • 홍옥, ˂혼춘 통상구를 핵심으로 국제물류체계 구축하려˃ (『길림신문』, 2011.9.7)
  • ˂혼춘권하 통상구《황금통로》로부상˃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xiwang_2010&logNo=90119766039, 2011.8.5)
  • 박정일, ˂“거룡”이 “알” 품는 “보금자리” 훈춘˃ (『조글로미디어』, 2011.6.21)
  • 정봉길, 허문호,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이 다시 뜬다˃ (『흑룡강신문』, 2010.8.23)
  • ˂천리 두만강 백년 통상구˃ (『연변일보』, 2010.1.26)
  • 연변일보사편, 『기사로 읽는 새중국 60년 조선족 변천사』(연변편)(민족출판사, 2010)
  • 이광평, 「이주 1번지 두만강 기슭의 조선족 선배들」(『재외한인연구』20, 재외한인학회, 2009)
  • 정희숙, 「중국 조선족 문화자원과 관광문화산업기획-연변조선족자치주를 사례로」(『재외한인연구』20, 2009)
  • 연변조선족자치주위원회 문사자료위원회(박청산 책임편집), 『연변문사자료휘집』2(연변인민출판사, 2008)
  • 연변조선족자치주위원회 문사자료위원회(박청산 책임편집), 『연변문사자료휘집』1(연변인민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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