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별한 이야기

중국 한인의 걸출한 화가 한낙연

한자 中國 韓人- 傑出- 畵家 韓樂然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빛나는 천재, 한낙연을 만나다

중국 근대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일생을 다 바쳐 예술 창작에 몰두했던 천재적인 인물이 있다. 바로 한인의 자랑 한낙연(韓樂然)이다. 한낙연은 유명한 화가이자 인류의 해방을 위해 자신을 바친 투사였다. 그는 연변에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의 방방곡곡을 누볐을 뿐만 아니라 길지 않은 일생 동안 중국 근대 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용정에서 태어나 반일 운동 역량을 키우다

한낙연은 1898년 길림성 용정촌(지금의 용정시)에서 태어났으며 아명은 광우였다. 한낙연의 부친은 일찍이 살길을 찾아 조선에서 연변으로 이주했으나 가난을 면할 수는 없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야 했지만 한낙연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자질을 보여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곤했다.

한낙연은 1914년 소학교를 졸업하였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교환수로 취직하였다.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중학교 전 과목들을 공부하였고 그림 그리기도 꾸준히 익혀나갔다. 얼마 뒤 세관 사무원이 된 한낙연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하였다. 길장도(吉長道) 세관은 외국인이 운영하였는데 상해(上海) 세관의 관할 범위에 있었기 때문에 연계 범위가 매우 넓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 정치·경제 방면의 많은 지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양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조형 예술에 대해서도 시야를 넓혔다. 미술 공부에 뜻을 두고 상해의 사해 미술 전과 학교에 입학하여 고학을 하면서 소묘, 속사 기법을 배웠고 수채화·유화를 배웠다.

1919년 3월 1일, 한국에서 일어난 3·1 운동이 연변에까지 확산되어 용정에서 3월 13일 반일 독립 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한낙연도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이를 통해 사상적 전환을 겪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반동 군벌들의 어둡고 추한 면을 보고 인민 대중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거대한 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열정과 청춘을 나라의 독립과 민족 해방 사업을 위해 쓰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1919년 봄, 한낙연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러시아 10월 혁명의 정황을 경험하고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진보적 단체에 참가하여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1920년 러시아에서 상해로 돌아온 한낙연은 조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에 관한 저작물을 출판하며 그 사상을 전파하였고, 당시 중국의 혁명을 이끌고 있던 손중산(孫中山)을 만나 투쟁의 의지를 굳혔다. 1923년 한낙연은 한인 가운데서 가장 먼저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연변에서 유럽까지, 그리고……

한낙연은 1929년 상해에서 지하당 재무 사업을 맡아 활동하던 중 적들에게 신분이 노출되어 유럽으로 떠나야만 했다. 프랑스에서 한낙연의 생활은 가난하고 비참했지만 굳은 의지로 화필을 들고 끈질기게 꿈을 펼쳐나갔다. 한낙연은 프랑스어를 배우는 한편 그림을 그려 팔기도 했고 문화 선진국 프랑스에서 개인전을 여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낙연은 프랑스에 있는 동안 회화 예술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고 이를 통해 프랑스 유명 화가들의 호평과 현지 매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리옹에서 미술 공부를 준비하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와 파리 미술 학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미술에 입문하였다. 한낙연은 파리 미술 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유럽 각국의 예술을 연구하기 위하여 네덜란드·스위스·영국·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특징적인 미술을 공부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와 항일 투쟁 선전 사업에 앞장섰으며, 동북 항일구국총회(東北抗日救國總會)에 참가하여 선전과 연락 임무를 도맡았다. 당시 동북 항일구국총회는 군민을 각성, 단합시키기 위해 『반공(反攻)』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였는데, 한낙연은 이 잡지의 표지와 삽화를 도맡았다. 이후에도 그는 각종 통일 전선 사업에 참가하였으며 자신의 회화적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1940년 한낙연은 일본군 특무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온갖 형벌과 유혹을 견뎌냈다.

1945년 해방 후 한낙연은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 예술을 발굴, 정리하고자 서역의 고적들을 찾아다녔으며 돈황 막고굴 천불동 벽화를 하나하나 모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역의 문화 예술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세 번째 신강으로 가는 도중에 비행기 사고로 당해 49세를 일기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한낙연의 화풍과 예술 세계

한낙연은 풍속화와 수채화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낙연의 작품들은 색채가 명랑하고 쾌활하며 지방 특색이 짙고 생활의 단면들이 사실대로 묘사되어 있다. 화풍은 한마디로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그 진실한 아름다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함과 감화를 느끼게끔 한다. 유화 「라풍렁사전의 가무」·「세느강에 비친 배 그림자」·「마르세유로느 운하에서」·「개선문 앞을 끊임없이 오가는 차들」과 수채화 「까자흐 천막」·「신젖과 식료품 파는 여성들」·「절구질하는 까자흐 여성」·「강변에서 빨래질 하네」 등은 생활의 진실한 일면을 화폭에 그려 넣은 대표적 작품들이다. 한낙연은 일상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일상 속의 진실한 감정 표현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천직이라고 굳게 믿었다.

또한 한낙연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넘친다. 실크로드의 낙타 방울소리가 울리는가 하면, 카자흐가 타는 돔브라 소리, 위구르족의 레와브, 그리고 초원의 티베트족의 노랫 소리로 가득 차있다.

한낙연은 언제나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화폭 속에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고 예술과 과학의 통합, 그림과 고고학을 융합시켜 고대 문명을 보호하는 데도 적극적인 의지를 내보였다. 이에 한낙연은 회화는 물론 고고학의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온 인도와 이란의 예술, 즉 잔타르 예술을 25년간 탐구했다.

세기의 화가, 중국의 피카소 한낙연

한낙연은 중국에 서양화를 도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자, 중국 고대 문화 예술 발굴 사업에 크게 기여를 한 중국 근대 미술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미술가이다. 각종 사조가 범람하는 유럽 화풍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민족적 전통과 민간 예술의 토대 위에서 유럽 현대 예술을 적절하게 받아들여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적 풍격을 형성하였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화풍에 동양 전통의 필묵풍이 가미되어 화면의 층위가 뚜렷하고 입체감이 넘치며 색조가 묵직하면서도 명쾌하다.

중국서북 지구의 풍토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풍경화와 풍속화를 그려 신강 일대 소수 민족의 생활을 여실히 보여 주었으며, 신강의 발굴 사업을 통해 신강 고대 문화 유적지인 고창국의 문화 보물고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난주(蘭州)와 돈황(敦煌)을 다니면서 남긴 작품이 후세에 많이 알려져 있다.

이렇듯 한낙연은 중국의 서북 일대에서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중국 내륙의 예술을 신강에 소개하는 한편, 신강의 특색을 중국 내륙에서 전시함으로써 서북 지구와 내륙의 문화 예술 교류를 촉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한낙연의 회화 예술은 중국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그의 유작 200 여 점이 중국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낙연이 세상을 떠난 후 사람들은 그를 종합 예술의 대표적 인물이라 칭송했으며, 세기적인 화가인 피카소에 빗대어 '중국의 피카소'라고 불렀다.

예술가이자 민족해방운동가, 한낙연을 기리다

한낙연은 위대한 예술가이자 국제 반파시즘 투쟁을 옹호한 혁명가였다. 한낙연은 한인으로서 중국과 한국, 더 나아가서 세계 근대 미술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타계하기 전까지 늘 한글 서적과 일본의 조선 침략사 책을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남다른 민족심을 가지고 있었다.

연변에는 아직도 예술가 한낙연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한낙연의 고향 용정시에는 한낙연을 기념하기 위해서 ‘낙연 공원’이 조성되었고 한낙연 기념비도 세워졌다. 이외에도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한낙연 평전을 출간하고 한낙연 연구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문학적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한낙연은 중국 한인들의 가슴에 영원한 자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고문헌
  • 전광하, 「우리 민족의 걸출한 화가 한낙연」(『일송정』 제2기, 2001)
  • 임무웅, 「위대한 혁명가 탁월한 미술가-한낙연」(『일송정』 제3기, 2001)
  • 서봉학, 「중국의 "피카소"-한낙연」(『문화시대』 158, 2010)
  • 『연변일보』(20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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